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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인생의 친척」/임지선(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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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인생의 친척」/임지선(요즘 읽은 책)

입력
199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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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고통은 기꺼이 감당해야할 인생의 동반자” 깨닫게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듯이 거침없이 나아가던 이십대. 삶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것은 나이 삼십이 넘으면서부터이다. 가까이 가면 더 멀리 달아나 버리는 신기루같은 현실은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인생의 친척」(웅진출판사간)의 주인공 마리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을 끌어안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첫 아이가 정신지체아로 태어나고, 정상인으로 태어난 둘째아이마저 사고로 신체장애인이 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이가 함께 자살함으로써 어머니인 마리에의 슬픔과 고통은 치유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깊어진다.

아이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마음이 황폐해진 마리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육체의 쾌락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이 세상을 저주해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 있을 행복을 꿈꾸며 자살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종교와 육체의 쾌락에서도 완전한 안식을 찾을 수 없었던 마리에는 멕시코의 한 농장으로 가게 된다.

농장사람들은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마리에의 모습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성녀의 모습을 발견한다. 비로소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마리에는 예전의 아름다운 미소를 회복하며, 멕시코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한다. 마리에는 자신에게 닥친 이해할 수 없는 불행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고통속에서도 일상생활을 꾸준히 재건하며 영혼의 안식을 얻게 된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속물적 욕망에 고통스러워하며 편안하고 아름다운 황혼을 꿈꾼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황혼은 슬픔과 고통을 뛰어넘어 오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리에처럼 고통과 슬픔이 가득찬 인생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 낸 강인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신의 축복이 아닌지….

결국 슬픔과 고통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야 할 인생의 또 다른 친척이라는 생각이 든다.<연세대 음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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