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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30년간 무대지킨 세대초월 “자유인”(가요현대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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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30년간 무대지킨 세대초월 “자유인”(가요현대사:13)

입력
1995.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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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노래” 외에 「화개장터」 등 자신 히트곡도 많아『왜 노래를 부르냐구요? 더 예쁜 여자, 더 좋은 여자를 얻어 멋지게 살기 위해서죠』

기이한 모습으로 등장한 가수 조영남(50)은 데뷔 2년 뒤인 1968년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가요계에 기여 운운 하는 것은 훨씬 뒤에나 나올 얘깁니다』라고도 덧붙였다.

납작코에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등 연예인으로서 부적합 판정을 받을 수도 있는 그의 외모는 괴짜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줬다. 한양대 음대를 중퇴하고 서울 음대에 다니는 이력도 이를 거들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30년이 가까운 지금도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60년대 청년문화의 산실이었던 서울 종로구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씨봉」에서 66년부터 가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캠퍼스 축제가수로 명성을 날렸다. 68년 미국가수 톰 존스의 「딜라일라」를 번안해 불러 일약 스타의 위치에 올랐고, 그해 서울시 문화상 대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

일찍 받은 큰 상이 기행을 부채질했는지 그는 「신고산타령」의 가사를 「와우 아파트가 와르르르르」로 바꾸어 불러 당국의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악에 기초를 둔 정통창법 때문인지 「건전가요」의 대열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조영남에게는 「자기 노래가 없는 가수」라는 명예롭지 못한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그러나 그는 1백여장의 음반을 통해 「이일병과 이쁜이」「화개장터」등 자신의 노래도 많이 불렀다.

그는 『내 노래 보다는 남의 노래를 다시 부른 게 훨씬 인기를 얻었던 기이한 운명 때문에, 그런 수식어가 붙은 것 같다』고 서운해 한다.

거침없이 흘러나와 듣는 이를 압도하면서도 또한 섬세한 감정이 묻어나는 목소리, 눈을 감고 무아지경에 빠진 표정, 무대에 서면 자신의 분위기로 관객을 몰아가는 정열등이 그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이유이다. 그의 직업은 본업인 가수 외에도 화가, 전도사, 수필가, MC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제 완전 중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또한 행동하는 듯하다.

그는 우리 가요계에서 가장 자주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수이다. 그러나 그는 늘 본류를 휘어잡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머무르고 있는 듯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그 자유인 기질 때문일 것이다.<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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