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 붕괴후 동반관계 노력은 짝사랑” 판단/나토 확대 등 반발 “군비증강 경쟁” 으름장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개편 움직임에 강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국방장관은 25일 발트해 연안 3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할 경우 자체 군사블록을 만들어 서방과의 군비증강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선언을 했다.
그라초프 장관은 또 보스니아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 유엔 평화유지군을 대체하게 될 다국적군의 지휘를 위해 러시아―나토 공동사령부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는 등 보스니아 사태에 개입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라초프의 이같은 발언은 러시아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습을 강행하는가 하면 동쪽으로의 나토확대를 부단히 추구해온 미국및 서방에 대해 그간 쌓여온 불만을 강도높게 표출한 것이다.
사실 구소련 붕괴이후 세력이 크게 약화된 러시아에서는 91년 공화국 출범직후만해도 반미·반서방의 목소리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전반적 분위기는 미국등 서방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4년이 흐른 지금 자신의 이러한 친미 ·친서방 자세가 메아리 없는 「짝사랑」이었다고 자각하고 있다.
지난해 중반부터 불거져 나온 나토 확대개편 문제는 서방에 대해 지녀왔던 기대를 허물어 뜨리는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탈 냉전이후의 새로운 안전보장의 틀이 아직 자리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나토의 일방적 동진에 대해 러시아가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폴란드 헝가리 체코등 동유럽 각국이 일찌감치 나토 가입의사를 분명히 밝혀온 점을 들어 나토 확대움직임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러한 서방의 적극적인 자세에 힘입어 구소련에 속해 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등 발트해 연안 3국 마저도 나토가입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최근 보스니아사태는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마지막 남은 한가닥 신뢰마저도 허물었다. 나토는 보스니아 사태와 관련, 러시아에 아무런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토의 확대 움직임을 계기로 싹트기 시작한 의회 언론계등에서 반미·반서방 물결은 보스니아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게 됐다. 보리스 옐친대통령마저도 최근 『유럽이 차가운 평화(COLD PEACE)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그라초프의 발언은 러시아의 반미·반서방 움직임이 이제 언어의 수사를 떠나 실제적 조치로 구현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서방은 그러나 러시아의 이같은 으름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의 주장에 동조, 새로운 군사블록에 참여할 동유럽 국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프랑스등이 러시아―나토 공동사령부 설치제의를 『실효성이 의심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한 것도 이러한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라초프의 이번 강경발언이 러시아가 오랜 뜸을 들인 끝에 나온 것임을 감안한다면 서방의 이러한 인식은 너무 안이한 것처럼 보인다.<이종수 기자>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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