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이 시작되던 60년대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청 앞쪽으로 향한 덕수궁 담을 헐어내고 궁 안쪽이 보이도록 쇠창살이 있는 울타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더욱 가관으로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창살 군데군데를 노랑, 초록, 빨강색등으로 메워 놓았었다. 비난의 여론이 들끓어 결국 도로 담을 쌓는 해프닝을 벌였지만 1년 혹은 그 이상의 꽤 오랜 기간 고궁이 수난을 당해야 했다. 담을 헐어냈을 때 돌이라도 보관했다가 그 돌을 다시 쌓았는지 지금 알 길이 없다.「고궁을 대중과 친하게 하자」는 것이 이 발상의 본뜻일 터인데 발상을 한 사람이나 그걸 좋다고 실행한 사람이나 참으로 알량한 사람들이다. 고궁은 시내버스를 타고 휙 지나가다가 보았다고 「친해지는」 곳이 아니라 가을같으면 낙엽이라도 밟으면서 호젓이 걸어야 하는 곳이다. 고궁을 찾는 시간을 따로 내어야 하고 적어도 입장권을 사가지고 들어가는 성의는 있어야 고궁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덕수궁을 호젓한 곳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그나마 시내 한 복판에 이런 고궁이 있어 다행이고 서울이 자랑스럽다.
덕수궁 담을 헐어냈던 행위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무지했던 모습이 드러나지만 오늘날 그런 행위가 전혀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어려워 두려운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동물농장」에서 양들이 외치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구호처럼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말이 귀에 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이라면 보통 서양 고전음악을 뜻하고 있지만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말의 대상은 그것을 넘어 클래식이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에까지 미치는 듯하다. 클래식(고전)이란 실은 역사를 거치면서 대중화해 온 옛것을 뜻한다. 특별히 「대중화」라는 말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야 하는 나날 속에서 틈을 내어 고궁을 찾아 산책할 때처럼 클래식이 왜 우리에게 정신의 양식이 되는지 알려주는 일은 적은 반면 정확한 의미를 알기 어려운 「대중화」라는 말이 마치 대중에 대한 친절인 양 선전되곤 한다.
클래식이라는 대상과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의 관계가 깊이 연구되지 않고 대중에게 전달되는 방법이 자세히 검토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들은 마치 고궁에 들어가 보지 않고 쇠창살 사이로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클래식의 참 맛은 느껴보지 못한 채 스스로 대접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중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구호, 『벽을 허물자』라는 말을 들으면 여기저기서 또 다른 「덕수궁 담」이 헐리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조성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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