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을 대수롭지 않은 밤거리의 무법자쯤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떼를 지어 달리는 이들은 운전자나 행인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폭주족의 질주는 속된 말로 죽기 살기나 다름 없다.오토바이를 멋대로 개조해서 굉음을 더욱 높이고 음주운전에 중앙선 침범은 식은 죽 먹듯 한다. 경찰의 미지근한 단속은 아랑곳 않는다. 질서의식이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으며 오로지 「쾌속의 쾌감」만을 즐기려 드는 것이 폭주족 신드롬(증후군)이다.
특별단속에 나선 서울경찰청은 지난 20일밤의 8백38명에 이어 23일밤에는 4백58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음주운전을 비롯, 무면허에 구조와 장치를 바꾸었는가 하면 공동 위협행위까지 저질렀다. 폭주의 위험이 어느 수준인지 쉽게 짐작이 갈 만하다.
오토바이 폭주족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지난 50년대 미국영화 「이유 없는 반항」을 통해서였다. 그 당시엔 영화제명만이 유행하더니,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비디오의 보급과 함께 미국과 일본의 모방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들은 혼자 또는 집단으로 몰려 다니며 사고를 일으키고 성범죄를 일삼아 온 것이다. 대부분이 10대 고교생이나 20대 초반의 청소년으로 여자를 뒤에 태우고 겁 없이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이젠 컴퓨터를 연락망으로 이용해 주말이면 30명 이상의 집단까지 형성한다니 놀랍기만 하다.
폭주족의 저변심리엔 모방성과 맹목성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에게 위협을 가해 자기를 과시하려는 유치한 충동에 자극받는 측면도 있다. 생명의 위험을 경고하면 죽으면 어떠냐고 반응하는 것이 그 입증이기도 하다.
분명 이들은 청소년문제의 새롭고 특이한 단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거리질서의 파괴와 사고 그리고 범죄 위협과 위험이 한꺼번에 중복되어 있다. 폭주 그 자체가 충동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강력한 단속과 제재밖에 달리 처방과 대응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이 한시적이거나 미온적이면 큰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기동력도 역부족인 현실이 딱하다.
그렇다고 눈가림 단속이나 방치는 있을 수 없다. 건전한 오토바이 운행 질서가 바로 잡힐 때까지 단속은 지속되어야 마땅하다. 거리의 무법자는 거리질서의 파괴자라는 인식을 깊이 심어줄 필요가 있다.
폭주족 스스로의 자각이 요구됨은 당연하다. 나와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행동은 더 이상 용납 못한다.
아울러 건전한 청소년문화와 환경의 조성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청소년에게 자포자기는 가장 무서운 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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