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앞에서 발견하는 삶의 찬란한 모습 담아시인 황동규(57)씨의 연작시 「풍장」이 한데 묶여 단행본 시집으로 나왔다. 82년 현대문학을 통해 첫 선을 보인뒤 14년동안 여러 문예지에 띄엄띄엄 발표했던 이 연작은 올해 현대문학 7월호에서 70편으로 끝을 보았다. 문학과지성사가 낸 시집은 그동안 이 출판사가 낸 1백여 권의 시인선과 달리, 국판 양장본 편집에다 선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나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손목시계 부서질 때/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살을 말리게 해다오./…/바람을 이불처럼 덮고/화장도 해탈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다오.」(풍장 1)
연전에 한 철학교수가 매장과 화장에 대한 생각을 지상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비록 죽은 몸이지만 땅 속에 들어가 흙이 덮이면 답답해서 못 견딜 것같을 테니 화장이 더 나을 듯하다는 느낌을 고백하면서도 우리가 뭇 생명을 양식으로 삼아 한 생을 살아왔듯이 죽은 뒤에는 흙 속에 들어가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펼쳤었다. 연작시 「풍장」은 죽음에 대한 그런 두려움과 대지로의 자연스런 회귀를 공유하면서도 죽어가는 몸이 삶을 못 잊어 하는, 또는 죽음 앞에서 발견하는 삶의 찬란한 모습을 담고 있다.
「노란 꽃대를 단 푸른 싹이 간질간질 비집고 나온다./…/호랑나비 바람이 달려와/마음의 바탕에/호랑무늬를 찍는다./찍어라 삶의 무늬를」(풍장 12). 시인이 목격하는 삶의 모습은 경이롭고 화려하다.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한 살아 있음의 세상은 순간적으로 눈에 띄며 그래서 일종의 깨달음이다. 「어젯밤에는/흐르는 별을 세 채나 만났다./서로 다른 하늘에서/세 편의 생이 시작되었다가/확 타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풍장 16)
하지만 삶의 황홀한 모습 그대로를 깨달음의 본체라고 말하지는 않는 듯 하다. 죽음과 아무런 벽을 두지 않는 삶에서는 알지 못할 두려움이 사라진다. 「친구 사진 앞에서 두번 절을 한다./친구 사진이 웃는다, 달라진 게 없다고./몸 속 원자들 서로 자리 좀 바꿨을 뿐,」(풍장 35).
「풍장」을 비롯한 황동규의 후기시들은 때로 「삶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을 동반하지 않은, 포만한 정신의 경지에서 오는 자족적이거나 유희적인 정서의 소산」이라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죽어도 살아 있을 「마음」이 들여다보는 삶의 이미지와 죽음의 과정에 대한 뛰어난 성찰임에 분명하다.<김범수 기자>김범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