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몇명이 어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인데도 집안 일, 직장 일로 같이 못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여행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못가겠다는 친구가 몇명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구제불능의 요조숙녀」라고 부르고 있다. 가족에게 불편을 주면서 주부가 어떻게 놀러 가겠느냐는 것이 그 모범생들의 생각이다.나는 항상 놀러 가자고 앞장 섰다가 써놓고 가야 할 기사를 끝내지 못해서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는 상습적인 바람잡이로 이번에도 가지 못했는데, 여행 못 간 것을 나보다 더 아쉬워하는 쪽은 「요조숙녀」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전화를 하며 『우리도 갔으면. 어디로 훌쩍 떠나 봤으면』하고 한탄했다고 한다. 『요조숙녀들이 훌쩍 떠나고 싶다니 무슨 큰일 날 소리야』라고 놀리면서 나는 새삼 제주의 바람속에 머리칼을 날리고 있을 친구들이 부러웠다.
올 가을은 기온이 낮은 편이어서 단풍이 예년보다 며칠 빠를 것이라고 한다. 설악산은 벌써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한라산도 10월10일께에는 단풍을 보게 될 것이라고 기상청이 예보하고 있다. 산의 80% 이상이 물들어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북부 9월하순∼10월초순, 중부 10월중순∼하순, 남부 10월하순∼11월초순으로 예상된다.
어느날 갑자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다는 충동은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이글이글 불타는 만산홍엽을 보면서 그런 유혹조차 못느낀다면 너무 적막할 것이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야 한다. 떠나면 신기하게도 떠나온 거리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자신이 보인다. 멀리 있는 나와 지금 여기 있는 나, 이 세상에 있는 나와 이 세상을 떠난 나, 옥신각신 아웅다웅하던 나와 한걸음 물러 선 나, 우리가 훌쩍 떠나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고대를 졸업한 한 여기자는 같은 학년 여자동창들이 졸업 30여년동안 계속 만나고 있는데, 해마다 여행을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11명이 경주에 2박3일 다녀왔는데, 『모두들 그 여행을 얼마나 즐겼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50대 여성들의 그 여행은 단풍처럼 찬란하게 느껴진다.
훌쩍 떠나고 싶은 것은 아내만의 충동이 아니다. 남편도 자녀들도 훌쩍 떠나고 싶다. 각자 어디론가 갈 수 없다면, 여행이 힘들다면, 배낭을 메고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산으로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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