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뜨거운 외침속 새로운 내일 전망케올 가을하늘은 유난히 눈부시게 푸르다. 그것은 아마도 지난 여름 우리들을 할퀴고 지나간 상처들이 너무나도 아팠기 때문인 것같다. 그래서 청명한 하늘의 고요함이 그대로 이 땅의 평화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되게 마련이다. 시 몇편 쯤 안 써본 사람이 없겠지만 가을은 특히 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들고 옛적에 읽었던 시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서가에 꽂혀 있던 고은 시인의 시집 「눈물을 위하여」(1990년 풀빛간)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새삼 그의 불타는 가슴과 역사에 대한 외침의 소리를 들어본다. 그가 후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는 현실과 우주를 한꺼번에 획득」하며 내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제의 전통에 예속되지 않는」시인이어서 좋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70년대나 80년대의 고난의 역사현장을 다시 떠올리면서 새롭게 다가오고 있는 새 세계를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은 눈물이 있어서/ 여자의 눈물이 있어서/ 비로소 이 세상이 사는 것 같구나/ 달빛 아래 자욱한 지난 날/ 살아온 것 같구나/ 그런데 1980년대 이래/ 이 나라의 여자들은 울지 않는다/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시절이 왔다」(다시 눈물).
그렇지. 우리는 지금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시절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 5·18을 규명하고 특별법을 만들라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은 역시 역사의 진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다 마칠 수 있는 일이란/ 이 세상에 없다/ 진정코 이 세상이란 몇천 년이나 걸려야 /집 한 채 지을 수 있음이여」(몇천 년).
그의 시는 하나의 예언이 되어 역사에 꽂히고 있어서 좋다. 「네 눈물 때문에 조국이 있다/ 세계 도처의 양심이/ 비에 젖으며/ 새로운 풍경으로 태어나고 있다/ 네 눈물 때문에」(눈물). 눈물은 눈물로 남아 있지 않는다. 눈물은 새로운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시인에게 눈물은 오히려 강물이 되어 역사에 강줄기를 만들고 바다에 이른다.
흔히 우리는 감상에 젖어 시를 웅얼거린다. 그러나 고은시인은 새로운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벗이여 나는 영웅을 원하지 않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영웅적인 세계 그것이네/ 지금 그 세계가 우리들의 손을 떠나서 이루어지고 있네/ 벗이여 이제는 술조차 필요치 않네」(낙조).
그렇다. 시는 역사의 지혜를 말하고 냉정하게 우리가 열어가야 할 내일을 예견하며 그 속에서 자신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이 가을의 푸른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시를 좀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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