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차원떠나 사회참여 환경 마련해야/고정관념·편견 버린 외국현실 부러워외국에서 생활하다보니 우리나라의 장애인정책과 일반인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의식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정책은 단순히 장애인을 도와주는 차원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이 정상인과 똑같이 사회에 참여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은 물론 빌딩출입구에 휠체어용 경사로가 없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지하철 승강장까지의 진입이 어렵다면 그 사회는 장애인에게 있어 장애물 경기장이나 정글일 뿐이다.
내가 다니는 대학에 다리는 물론, 손도 못 움직여 호흡으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는 친구가 있다. 아무런 불편없이 학교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면서 『여기가 선진사회로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장애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는 어느 건물이나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장벽이 없어 공부하고 생활하는데 자신의 장애가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학교 뿐아니라 일반사회, 특히 직장에서도 장애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 92년에는 장애인법령을 제정, 25인이상 사업장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위반때는 엄한 처벌을 한다. 또 직장내 장애인 편의시설과 보조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정신질환이나 정신지체를 가진 장애인들도 보조를 받으면서 직장에 취직하는 제도도 마련해 놓았다. 적절한 뒷받침만 있다면 장애인들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와 이웃의 일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차원뿐 아니라 우리자신도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고쳐야 한다. 우리는 너무 개인차이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하고, 이웃에 닫혀있다. 3년전 세살된 딸을 취학전 3∼5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신청했었다. 학교는 주택가에 있었다. 장애아가 30%나 되고 학비가 무척 비싼데도 경쟁률이 얼마나 심한지 2년후에도 입학기회가 돌아오지 않아 결국 포기했지만 한없이 부러웠다. 장애인아파트나 시설이 들어선다고 주민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우리나라의 님비현상과 비교하면 놀라울 뿐이다.
우리 모두는 예비장애인이다. 언제 나뿐 아니라 가족중의 누가 불의의 사고 등으로 장애인이 될지도 모른다.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마저 못 누리는 사회는 선전국을 논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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