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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제국의 이상한 죽음」 미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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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제국의 이상한 죽음」 미서 출간

입력
1995.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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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붕괴원인은 이데올로기 상실”/고르비의 즉흥적개혁등 당시 지도층 행동분석구소련은 왜 그렇게 빨리 붕괴됐을까. 구소련의 붕괴과정을 당시 지도층의 행동방식을 중심으로 분석한 「소비에트제국의 이상한 죽음」(THE STRANGE DEATH OF THE SOVIET EMPIRE·메트로폴리탄 북스간)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논픽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프라이스 존스.

소련의 붕괴과정을 살펴보면 91년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등 지도층이 무력을 사용해 각 공화국의 분리독립을 막지 않은 점이 우선 눈에 띈다. 56년 헝가리나 68년 체코의 민주화운동은 무력진압을 요구하는 강경론자들이 득세, 동구의 민주화요구를 무력으로 막았다. 그런 경험으로 볼 때 대중시위운동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또 공산당 지도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기보다는 강경조치를 취해 왔다.

그런데 소련은 왜 강경진압책을 강구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전의 동구권을 여행하면서 만난 학자, 해임된 정치가, 해산된 사회단체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은 구소련의 극적인 해체 과정에서 당시 소련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엇이 제국내의 무질서를 불러 일으켰을까. 당시 소련의 지도자들은 소련체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부족했고 체제를 개혁할 아이디어도 없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안들은 대부분 장기적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자신 개혁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했다. 측근중 한 사람은 고르바초프를 『무엇인가 기적적인 일을 했지만 뒤에 가서야 그 성과를 깨닫게 되는 정치적인 콜럼버스였다』고 비유했다.

고르바초프 개혁안의 주요 지도노선은 무력사용을 피하자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그의 평화주의로부터 비롯됐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무력을 사용할 경우 군부강경론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된다는 우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반대세력들과 타협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 무력사용은 서방을 배신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는 가정이 보다 설득력있는 분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제국주의의 패배에 대한 인정과 구소련을 구성하던 각 공화국에 대한 평화적 독립허용을 구별하는 시각도 있다. 라트비아 최후의 한 공산주의지도자는 『당시 민족주의세력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어떻게 철수하느냐였다』고 증언했다.

각 공화국에 주둔했던 구소련군대의 무혈철수는 그 후 의심할 나위없는 고르바초프의 주요 업적으로 간주돼 왔다. 보리스 옐친이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연방이탈을 주장하던 각 공화국의 민족주의 세력을 무력진압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과 정당지도자들은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신념을 포기한 상태였다. 즉 싸울만한 가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내부의 점진적 붕괴는 공산당을 냉소주의만이 가득찬 빈 껍데기로 만들어 제국의 붕괴를 부채질했다. 리투아니아의 한 민주주의자는 구소련이 무력진압을 포기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공산주의자들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여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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