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월탄책명 제안 인연… 국가 큰일때면 들리는듯그날, 무슨 일로 월탄 박종화 선생댁엘 갔는지 기억이 아삼삼하다. 이런저런 담소 끝에 선생께서 『내 자네한테 뭘 하나 해 주고 싶었는데 시 하나 주지』하시고는 「학울음」을 화선지에 옮겨 주셨다.
혹은 선생의 수필집인 「달과 구름과 사상과」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맘때 나는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선생의 수필집 편찬을 거들었다. 하루는 선생께서 책제목을 뭘로 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시기에 문득 글묶음이 세 부분이라는 데에 착안이 되어서 「달과 구름과 사상과」로 하면 어떨지 하고 운을 떼었더니 『그 「과」에 묘미가 있구먼. 아주 맘에 드는데』하셔서 즉석에서 결정이 났고 선생께서 벼루를 당기어 손수 먹을 갈아 일필휘지로 책제목을 써 주셨다. 다 쓰시고 나더니 나를 건너다 보시며 『책명을 아주 잘 붙였으니 보답을 해야 되겠는데 시 한 수 써 주지』하시며 회갑기념으로 내신 「월탄시선」을 꺼내 책장을 하나 하나 넘기시다가 「학울음」을 써주시었다. 앞뒤 기억이 따로 떨어져 있는데 뒤쪽이 맞을 성 싶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이 시는 항상 내 공부방의 벽에 붙어 있다. 을사삼월하한이라고 되어 있으니 65년 봄, 그러니까 꼭 30년이 된다. 『학 백학 천년학은 바로 우리 민족이라네. 잘 새겨 읽어 보게』하시던 선생의 말씀이 날이 갈수록 오히려 또렷해 독재정권의 억지도, 부정선거 규탄의 함성도 학울음으로 들렸고, 무역 1백억달러 돌파, 올림픽개최 확정, 마라톤 제패등 쾌보도 학울음으로 들렸다. 30년동안 이 시를 통해 수많은 학울음을 들었다. 맑고 곱고 화사한 학울음은 긴 여운으로 나를 들뜨게 해 주었지만 다리가 싹둑 내려앉았다거나 백화점이 폭삭 가라앉았다는 그런 학울음은 참으로 참담하고 어두운 우렛소리로 귓가에 언제나 맴돌고 있다.
선생 가신지 어언 15년, 아무리 바쁘셔도 한 두달에 한 번쯤은 제자들 모임인 수요회에 참석하시어 올리는 술잔 사양하지 않으시고 취흥에 겨워 만리장강 마냥 내리쏟아 놓으시던 담론, 언제나 봄바람이 가시지 않던 풍모. 올봄에도 성묘하고 오는 길에 술자리가 벌어져 수남 문우(소년한국일보 김수남 사장)가 그 특유의 총기와 생동하는 목청으로 읊조린 선생의 시 「꽃밭」뒷 구절.
먼 뒷날/먼 뒷날/내 없는 먼 뒷날/ 내가 심은 서향이랑 파초랑 월계수랑//꽃이 피면 나비가 오리/오늘 내가 거닌, 사람 없는 네 동산마냥,/꽃을 피워 황금으로 오월을 이루리라//그 때 누군지는 모르지만/주인 없는 저 꽃밭을 걸으리라./걸으면서 나처럼, 나를 울고, 울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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