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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남자/설희관(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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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남자/설희관(메아리)

입력
1995.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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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는 세태를 반영한다. 최근 널리 퍼진 「간 큰 남자」시리즈는 한낱 우스갯 소리에 불과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TV채널을 마음대로 돌리다가 마누라에게 혼나고, 술마신 다음날 새벽 밥차려 달랬다가 깨지고, 외출하는 부인에게 행선지와 귀가시간을 꼬치꼬치 묻다가 면박당하는 「간 큰 남편」들. 예전에 비해 목소리가 작아진 오늘을 사는 가장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노부부가 이사가는 날 벌어진다. 이삿짐은 모두 트럭에 실렸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간 큰 영감은 조수석에 미리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못쓰게 된 물건과 함께 버려질지도 모르는데….

최근 우리 사회에는 실제로 심장에 에어백이라도 단듯한 간 큰 남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황금욕이다. 삼풍참사로 전대미문의 비극을 만든 이준씨 부자, 겁도 없이 발권은행에서 돈을 마음대로 빼내 쓴 「돈가사리」, 불쌍한 소쩍새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배신한 가짜 승려 일력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세상에는 순수하고 가슴이 따뜻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훨씬 많아 살맛이 난다.

지난 6일새벽 5억원이 넘는 현금과 수표 어음 등이 든 봉투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준 환경미화원의 미담은 신문의 사회면을 환하게 만들었다. 기사를 보면서 역지사지 해봤다. 『내가 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자문과 함께. 얼마전 TV 토크쇼에 출연한 원로정치인 소강 민관식(77)씨의 부인 김영호(71)여사도 여러사람들의 화제에 올랐다. 그는 18세에 시집가서 오늘까지 53년동안 남편과 겸상을 해본 일이 없다. 이화여전 음악과를 다닌 신식여성이지만 남편과 눈빛조차 마주 못할 정도로 순종일변도의 삶을 살아왔기에 부부싸움도 모른다. 지난해 여름 무척이나 더웠던 어느날 집으로 손님들을 부르겠다는 남편에게 밖에서 모시면 안되느냐고 했다가 혼난 것이 최초의 「거역」이었다니 놀라웠다. 대담자가 「간 큰 남자」이야기를 꺼내자 빙그레 웃기만 했다. 한평생 정성껏 손수 만든 음식으로 가족과 남편 손님들을 위해 상을 차리다 보니 요리연구가의 경지에 올랐다.

그래서 「나의 주방생활 50년」 「앞치마에 담긴 보람」등 요리관련 저서가 두권이나 된다. 그는 이책의 후기에서 『친정어머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왔을 뿐』이라고 지난 인생을 담담하게 회고했다. 현모양처의 귀감, 속된 표현을 빌리면 「천연기념물」인 김여사에게 소강은 바로 하늘인 것이다. 「간 큰 남자」시리즈가 회자되는 오늘, 부부간의 도리를 생각해 본다.<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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