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외국으로 단체관광을 갔다가 개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요즘엔 카드 키를 사용하는 호텔이 많아 밖에서 그 카드 키를 꽂으면 도어가 저절로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 다시 그 카드를 키 박스에 꽂으면 안으로 도어가 잠기면서 방안에 전등이 켜지게 되어 있다.
현지시각으로 밤 11시쯤 됐을까? 필자는 원래 밤에 물을 많이 마시는데다 이미 물주전자가 바닥이 나 있었던지라 아래층 프런트로 연락하여 마실 물을 좀 올려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20분이 다 돼 가는데도 영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연락을 해 보니 벌써 몇 분전에 내 방문 바로 앞에 갖다 놓았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러닝셔츠와 삼각팬티 차림으로 도어를 열고는 발밑을 살폈다. 그러나 올려보냈다는 주전자가 영 눈에 띄질 않는 것이었다. 필자는 다시 엉덩이쪽은 그대로 두고 목만 길게 빼고는 복도 좌우를 두루 살폈다. 아닌게 아니라 내 방인 줄 잘못 알고 갖다 놓았는지 내 방에서 오른쪽으로 두칸쯤 떨어져 있는 방문 앞에 똑같은 모양의 주전자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좌우를 한번 번갈아 살피고 나서는 삼각팬티 차림으로 재빠르게 그 주전자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다시 내 방문으로 와서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아뿔싸!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카드 키를 안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도어가 그대로 잠겨서 열리질 않는 것이었다. 때를 맞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배낭을 멘 외국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필자가 서 있는 복도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깡마른 체구에다 삼각팬티만 입고, 주전자를 손에 들고, 복도 한 가운데 서 있는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지나가는 그들의 표정은 분명 필자를 위대하게 보아주는 표정은 아니었다.
결국 그 복도를 지나가던 한 외국인의 도움으로 프런트에 연락이 되어 보조열쇠로 간신히 문을 열고 들어가긴 했지만 제발 이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은 몰라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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