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여일 전의 일이다. 혹시 이제는 시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경기도 용인의 사회사업체인 경기여자기술학원이라는 곳에서 37명의 10대 여성이 불의 연기 속에서 죽어갔다. 방화로 인한 희생이니 하나의 범죄사건의 피해라고 보아 넘긴다면 그저 끔찍한 일로만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어찌하여 그 속에서 방화가 일어났고 그 많은 젊은이들을 죽게 하였는가에 이르면 심각하고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곳은 국민복지증진과 탈선소녀들의 선도를 위해 거액의 지방재정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불에 타다 남은 그 건물에는 원생의 도망 방지를 위한 쇠철창과 담장 위에 철조망과 전자감응장치가 있고 출입문이 굳게 잠겨져 미처 탈출치 못하여 그 많은 목숨을 잃게 하였다는 것인데 이 참사를 보는 국민의 눈은 냉담과 무관심으로 스쳐 지나가 버렸다. 언론 역시 삼풍사고를 치른 직후의 탓인지 그저 한 두번 사실보도나 복지행정의 허점을 들추는 정도에 그쳤고 중앙 관변에서는 별다른 반응조차 없었다. 오히려 한국은행에서 폐기된 지폐가 유출되어 돈으로 둔갑되었다 하여 소란스러웠다.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생명이 파리목숨같이 여겨지는 이 사회, 남의 일일뿐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이 나라 시민들, 아무 책임도 느낄 줄 모르는 정부, 그 모두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지난 1월하순 대통령의 세계화 구체방안이 발표된 일이 있었다. 국가목표를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로 삼고 그 발전전략이라 하여 6대 실천과제를 정했다고 했다. 국부적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1위국이라고 하니 금세기 안에 세계중심국가가 되겠다는 목표설정이 그리 과욕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중심국가란 물질적 풍요만으로 그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우리는 광복 반세기라 하여 화려한 축하행사를 했다. 그동안 우리는 물질적 부를 향해 모든 힘을 쏟아왔고 그 성과도 매우 컸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과제이자 지고의 목표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의식은 경제발전과 반비례로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그리 자유롭지 않지만 이 세상에 생을 누리는 이상 거기에는 생명, 자유, 평등,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이 있어야 함이 인류역사의 교훈이요, 오늘날 국가의 지상의 목표이다. 세계화도 그렇고 「통일된 세계중심국가」의 이룩도 모두 그 최고의 목표 달성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국민에 대한 헌법상 의무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인 인권의 보장에 있으며 그 보장의 구체적 실천규범이 바로 법이다. 법은 국민을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나라가 꼭 지켜야 할 규율이어야 한다.
용인의 방화참사현장에서 불길에 그을린 16세소녀의 일기책 속에 「8월20일 하오 7명이 도망치다 잡혀 무지 매를 맞았대. 누가 이런 곳을 만들었는지. 나도 걸리더라도 도망칠거야」라고 적혀 있다 했다. 그 참사는 복지의 이름아래 감금, 폭행과 가혹행위가 자행된 후에 필사의 탈출을 위한 방화의 결과였다.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이 사회에 이러한 암흑시대의 짙은 그늘이 버젓이 나라의 도움을 받으며 안주해 있었으니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현대사회에서 인권의 개념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해 날로 그 폭이 넓혀져가고 있지만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먼저 목숨을 빼앗기지 않는 권리, 그 다음이 신체적 자유의 보장이며 복리의 증진, 재산권의 보장과 같은 것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에 비하면 사치스러운 덕목들이다. 그러나 용인의 젊은 그들은 외형상 자원해서 그 곳에 갔으나 철창속에 갇히어 신체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그 곳에서 풀려나려다 매를 맞았으며 이를 피하려다 결과적으로 생명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국가의 존립목적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기에 앞서 선진국가로 진입중이라고 자랑하는 이 땅에 이러한 인권이 짓밟힌 사태가 벌어졌어도 세상은 조용하니 이 나라의 개명의 수준은 과연 세계 몇위나 될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우리는 지난 오랜 세월 앞날을 위한 능률의 명분 아래 쿠데타와 긴급조치, 삼청교육과 같은 핍박과 잔학행위가 정당시되는 사회에서 살아왔고 그 까닭에 심한 가치의 도착에 빠져버렸었다. 생명과 신체에 대한 자유의 보장이 없는 사회, 삶의 참 뜻이 잊혀져 가는 사회, 기본권 보장의 법이 외면당하는 사회, 비인도적인 사회는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비문명적 사회임에 틀림이 없다. 세계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윤택한 나라가 된다 해도 그것이 나라의 궁극적 지표가 될 수는 없다. 행복한 문명사회란 인간의 존엄함이 인정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낙원을 말함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의 최고의 가치와 목표가 되어야 한다.<변호사·전 대한변협 회장>변호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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