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자서전 「나의 미국여행」 안팎/“부시·클린턴 유혹손길” 비중과시/제3정당론도 주장 정계서 촉각/15일 출간앞서 미 순회 대선전 돌입 관측96년 미대선에서 콜린 파월(58) 전합참의장은 걸프전의 영광을 과연 재현할 수 있을까. 11일부터 시작돼 20일간에 걸쳐 미전역의 23개 도시를 순회할 파월의 행보에 미정계의 관심이 온통 쏠리고 있다.
파월의 이번 순회 목적은 명목상 오는 15일 출간될 자신의 자서전 「나의 미국여행」(MY AMERICAN JOURNEY)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대선출마에 관한 민심파악이 주목적으로 일각에선 오는 11월 정치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파월이 사실상 대통령선거전에 돌입했다는 관측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다.
파월이 6백만달러의 저작료를 받고 집필한 자서전은 할렘에서 자라나 흑인 최초로 합참의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생행로는 물론 행정부내의 깊숙한 비화와 당면 현안들도 상세히 언급, 정치에 대한 그의 야망을 보여주고 있다.
비화중 하나는 자신의 정치적 비중을 은근히 과시한 대목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을 정치권에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부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조지 부시 전대통령의 설득은 집요했다. 그는 88년 대선승리 직후 파월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파월이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부시의 적수였던 클린턴 대통령도 92년대선 당시 파월을 러닝메이트로 삼기위해 노력했다. 클린턴은 민주당 중진인 버논 조던을 통해 의향을 타진했지만 파월은 끝내 고사했다. 클린턴은 대선승리이후에도 파월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94년에는 한때 자질론이 들먹여지던 워런 크린스토퍼의 후임으로 국무장관직을 제의한 것으로 언급돼 있다. 물론 파월의 대답은 「노」였다.
파월은 또한 이 자서전을 통해 미국의 현정치상황을 언급하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에 이은 「제3의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민주·공화 양당정치는 이제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단일 슈퍼파워로서의 지도적 위상을 지키고 미국내의 민감한 중심 여론층을 대변하기 위해 미국은 제3의 정당을 만들 시기가 성숙했다』고 파월은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내 자신이 「위대한 흑인들의 희망」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내가 다른 후보들 보다 미국의 문제점을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경우에만 차기대선에 뛰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월은 걸프전의 비화도 털어 놓았다. 미군은 당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 딕 체니 국방장관의 지시에따라 이라크에 핵공격을 가하는 방안을 비밀리에 검토했다고 폭로했다. 파월은 『사막에 분산배치된 이라크의 1개 기갑사단에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려해도 상당량의 소규모 전술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이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파월은 또 걸프전 야전사령관인 노먼 슈워츠코프장군과 수차례 이견갈등이 빚어졌으나 『나는 언제나 노먼을 지원하고 때로는 그를 달래며 그에 비판적인 사람들로부터 바람막이 역할도 해줘야 했다』고 말했다.
자메이카 출신 흑인2세인 파월은 이 자서전에서 흑인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해 미국 재건설에 동참하자고 촉구하면서 『결코 남과의 경쟁을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자신이 합참의장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흑인을 보호하는 소수계보호법(어퍼머티브 액션)때문이었다는 일각의 해석을 일축하면서 『나는 군에서 지도력이 뭔지를 터득했으며 이는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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