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호암아트홀서/“후학양성하며 죽는날까지 소리 하겠다”경기민요 인간문화재 묵계월(74·본명 이경옥)명창이 60여년 소리인생을 정리하는 「소리잔치」를 벌인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로 청중을 울리고 웃기면서 한평생을 살아 온 예인의 「고별무대」이다.
16일 하오 7시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소리잔치는 「끝없는 소리의 길」로 이름 붙여졌다. 이번 공연이 공식적인 「이별무대」이지만 그의 소리인생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죽는 날까지 소리를 하겠다』는 그에게는 수많은 제자들에게 소리를 전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가 남아 있다. 욕심같아서는 두고두고 청중 앞에서 노래하고 싶지만 흐르는 세월에 겸손하게 고개숙이며 더 늦지 않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무대를 마련했을 뿐이다.
이번 공연은 동료 이은주명창과 임정란 지화자 박순금등 제자들이 함께 하는 정겨운 무대이다. 한이 서린 듯한 애조띤 서도민요에 비해 곱고 섬세하면서도 흥겨운 경기민요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공연은 가사장삼을 입고 출연자 모두가 함께 부르는 불교풍의 「회심곡」으로 시작, 「경기 산타령」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한창때보다는 소리가 굵어져 영롱한 맛은 덜하지만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크고 매혹적인 소리로 경기민요 「적벽가」「삼설기」「창부타령」「노랫가락」, 서도민요 「영변가」등을 부른다. 특히 선비가 글을 읽는 것처럼 부르는 「삼설기」는 그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로 경기민요의 청아한 기품을 느끼게 한다.
묵계월명창이 노랫길로 접어 든 것은 올해로 64년째. 1921년 서울 중구 광희동에서 가난한 양반의 넷째 딸로 태어난 그는 가슴 속에서 치솟는 소리에 대한 열정을 가누지 못하고 10세때 집을 떠났다. 소리의 길을 열어준 수양어머니의 배려로 주수봉 최정식 이문원등 당대 명창을 사사한 그는 일찍부터 「이다음에 크게 될 소리꾼」으로 기대를 모았다. 15세때인 1936년 경성방송국 국악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17세때 부민관 명창대회에 출연하며 명창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75년엔 동료 안비취 이은주명창과 함께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여든살이 되는 해에 이런 무대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근력이 모자라 그때에도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어서 서둘렀어요. 앞으로도 소리가 잘 나와 여생을 제자들 가르치는데 전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노명창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김철훈 기자>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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