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북한 추석/정일화 편집위원(남과 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북한 추석/정일화 편집위원(남과 북)

입력
1995.09.11 00:00
0 0

서울을 들고나는 문이 원래 4개있었다. 동쪽으로 나있는 흥인문, 서쪽문인 돈의문, 남대문인 숭례문, 북대문인 숙정문이 그것이었다. 오늘날은 이 4대문이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이 고속도로를 따라 추석쇠러 고향을 찾아가는 자동차대오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사회학자들 중에는 이 교통혼잡을 걱정하기 보다는 저런 시끌벅적한 추석명절이 어느날 싸늘하게 식어져 갈 것을 더 걱정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농촌이 도시화돼 버리고 시골이 고향인 인구가 줄어들면 과연 1년에 한두번 보는 저런 명절분위기를 이 땅의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이스라엘의 경우는 그들의 최대명절인 욤 키프르를 사막에서 쇠는 전통을 갖고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애급을 탈출한 것을 기념해 갖는 이 욤 키프르는 부자건 가난뱅이건 이 날이 오면 식구들이 광야로 나가 천막을 치고 그들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사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농촌이 도시화되고 인정이 메말라 버릴지라도 이스라엘에 광야가 있는 한 3천년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명절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도 추석명절을 오래 지키려면 뭔가 아이디어를 내야 할 판이다.

남한의 추석과는 달리 북한추석은 좀더 1차적 문제로 범벅이 돼 있다. 지난번 홍수로 낭림산맥 서쪽의 거의 모든 농경지가 물에 잠겼거나 심한 피해를 입어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오곡백과의 풍성한 수확을 내다보면서 둥근달에게까지 감사하는 그런 추석을 쇨 형편이 아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북한전역에서 이번 홍수피해를 냈다고 유엔에 보고 하고 있을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아직 확실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비피해가 들녘의 벼를 쓰러뜨리는 일에 그치지 않고 밭의 옥수수대까지 넘어뜨렸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옥수수대가 쓰러졌다면 올 가을의 북한농사는 아마도 사상 최악이 될 입장이다. 옥수수는 북한곡물재배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옥수수는 벼와는 달리 웬만한 비에는 쓰러지지 않으나 대신 한번 쓰러졌다하면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는 것이어서 그해 수확은 영점이 되고 만다. 3백∼6백㎜가 넘는 비가 거의 전국에서 퍼부었고 북한의 옥수수밭 구조가 비피해를 막기에는 매우 서툴게 돼 있기 때문에 아마도 옥수수밭까지도 이번 비피해를 입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80년초 새땅확장운동을 벌여 경사도 25도까지의 모든 산을 밀어젖혀 나무를 깎아내고 소위 다락밭이라는 것을 만들었었다. 웬만한 야산은 완전히 나무가 깎여 나가버렸고 키큰산도 거의 중턱까지 나무대신 다락밭이 들어서게 됐다. 나무없는 산에 비가 쏟아져 내리면 산사태가 자주 나 그동안 북한농업당국은 이 다락밭 문제를 놓고 매우 고심해 왔었다. 대동강, 청천강등의 하구준설작업이 거의 안돼있는 것도 북한홍수피해를 더하게 한 요인이었다.

청진항에 쌓여있는 남한쌀, 일본쌀이 이번비에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미처 비를 못피했다면 쌀은 많이 상했을 것이다. 북한의 수송사정으로 봐 이 청진항 쌀이 그동안 농민에게까지 전달됐을 리는 없다. 북한도로사정이 열악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것인데 이번 비로 그 도로마저 많이 훼손됐다. 도무지 청진항에 쌓인 쌀이 가까운 시일내에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등의 시골농촌에까지 배분될 리가 없다. 도정이 안된 상태의 벼를 북한에 실어다 줬더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고 또 기왕에 도정한 것이면 배분지에서 가까운 항구로 나눠 보낼 연구를 남북이 좀더 신중히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었다.

남북한이 추석과 같은 명절기간을 통해 적대관계를 한때나마 정지시키는 모라토리움을 가질 수는 없는가. 이 모라토리움을 「명절같이쇠기운동」기간으로 만들어 남북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한민족이 하나되는 길은 열리고도 남을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