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구소련시절 북한과 맺은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의 폐기를 선언한 것은 냉전시대의 핵심적 유물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크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폐기선언은 또 러시아와 북한간의 오랜 동맹관계를 공식적으로 해체, 정리하는 것으로서 장차 동북아세아질서의 재편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지난 1961년 9월 7일 체결한 러시아·북한간 원조조약은 1조에 한 당사국이 피침 또는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타당사국은 즉각 군사적 지원을 하는 소위 「자동개입」을 규정했을 뿐아니라 평상시에도 각종 군사원조의 근거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후반 개혁·개방을 표방한 고르바초프체제는 서울올림픽대회참가를 시발로 한국과의 접근정책을 펴면서 북한에 대해 조약개정을 제기했었다. 자동개입하게 되어 있는 「피침」의 내용을 분명히 확인하는 장치·조문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조약개정제의에 고립을 우려한 북한이 불응하고, 구소련연방해체후 러시아가 조약의무를 인수한 뒤에는 군부강경파의 반발로 지연됐다가 이번에 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군사동맹의 폐기선언으로 러시아는 남북한 등거리외교원칙에따라 92년 한국과 맺은 주권존중, 평등 내정불간섭, 영토보전 및 경제협력의 촉진등을 골자로 한 기본조약의 체결을 북한과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군맹대신 통상적인 국가관계를 바탕으로 50여년간 다져온 북한과의 전통적인 군사·경제관계를 새롭게 내실화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영향력확보에 주력할 것이 분명하다.
한편 북한은 새로운 조약의 검토에 동의했지만 무효화한 러시아와의 군맹을 보충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할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90년9월 김영남 외교부장이 조약개정을 요구하고 남한과의 접근을 꾀하는 구소련에 제출한 외교비망록에서 「군사조약을 유명무실화할 경우 우리는 무기를 스스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고 한뒤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김정일은 체제의 생존·수호를 명목으로 또다른 핵개발을 시도하고 특히 장거리미사일과 화학가스생산등에 주력할 여지가 다분히 있다.
또 외교적으로는 종래의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한편 한반도의 평화 및 강대국의 관여배제를 명분으로 한미상호 방위조약의 폐기도 적극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우리로서는 러시아의 군맹조약폐기는 매우 환영할 일이지만 이를 보충하기 위한 북한의 또다른 군사적 움직임과 준비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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