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치열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5일 태평양상 무루로아섬에서 92년후 처음으로 지하핵실험을 강행했다. 지난 6월 시라크대통령이 핵실험계획을 발표한 이후 앞장서 반대해 온 뉴질랜드와 칠레는 파리주재 대사를 소환했고, 일본 호주 미국 페루등 태평양 연안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강경한 비난과 함께 추가 핵실험을 중지토록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우리 정부도 외무부성명을 통해 「실망과 유감」을 표명하고 『앞으로 일체의 핵실험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프랑스정부는 실험후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의 핵실험계획은 장기적으로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결한 것』이며 『핵억지력은 프랑스의 독립과 국익을 궁극적으로 보호하는 최우선의 국방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내년 6월께로 예정돼 있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체결하려면 그 전까지 핵개발기술을 일정수준에 올려놔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정부측의 설명이다. 중국이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 5월 세계 1백70여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무기연장에 합의했고, 핵보유국이 미·영·불·중·러 5개 강대국에 제한돼 있는 마당에 강대국끼리의 독립적인 핵기술개발은 냉전후의 세계평화체제에서 더 이상의 명분을 갖기 어렵다.
시라크대통령은 「프랑스의 영광」을 말하고 있지만 유럽 각국은 지금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의 패권추구는 가능하지도 않고 용납될 수도 없다고 보는 것이 국제여론의 추세다.
프랑스정부는 핵실험계획 발표후 태평양연안국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 왔고,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현장시위에는 특공대를 투입해 시위선박을 나포하는등 무력진압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프랑스국민은 60% 이상이 핵실험을 반대하고 있고 르 몽드같은 유력한 언론매체들도 핵실험결정을 철회토록 요구해 왔다.
프랑스핵실험은 시라크대통령 취임후 강경보수화의 한 흐름이다. 프랑스의 제3세계 무기판매고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위로 올라선 것이나, 알제리군사정부에 대한 지원정책 때문에 회교반정부단체의 연쇄 폭탄테러로 파리시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나 모두 같은 맥락에서의 일들이다.
우리가 프랑스에 기대하는 것은 경제·군사력이 최상의 가치로 군림하는 오늘의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도덕성을 갖춘 문화대국으로서 세계의 정신적 지도국의 역할을 맡아주는 일이다. 프랑스가 이 시점에서 핵실험을 중지한다면, 그것은 프랑스가 국제여론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여론을 존중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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