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 침묵만큼 깊어진 여성내면의 세심한 탐구/사람살이의 아픔 고전적 문체로 그려/작가세계 재조명 「문학앨범」도 나와시적인 문체와 밀도 높은 상징으로 뚜렷한 자기영역을 구축한 작가 오정희(48)씨가 잇따라 중편집을 낸다. 「불망비」 「그림자 밟기」 「파로호」 「옛 우물」을 묶은 작품집「불꽃놀이」가 이달 중순께, 올해 발표한 「새」 「구부러진 길 저쪽」이 묶여 또 한 권의 중편집으로 각각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게 된다. 89년 중편 「파로호」를 낸 뒤 5년동안 작품을 쓰지 않았다가 지난해 「옛 우물」을 발표한 그는 올해 계간지에 「새」(동서문학 봄호), 「구부러진 길 저쪽」(문학과사회 가을호)등을 발표한 바 있다.
『무슨 특별한 이유 때문에 글을 못 썼던 것은 아닙니다. 집안일, 미국생활의 후유증에다 무엇보다 90년대의 사회상 변화로 인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됐고 소설창작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고 말하는 작가는 등단작 「완구점 여인」에서 「구부러진 길 저쪽」에 이르기까지 여성 내면의식의 여러 면모를 세심하게 드러내는 일관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구부러진…」은 서울근교 소도시 원천을 무대로 인자와 은영 모녀, 고아로 신산한 삶을 살아온 현우등과 「도시의 끝 어디에선가 길고 긴 흐느낌, 비명」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 되는 여러 부도덕한 사건을 중첩시키면서, 우리 삶의 스산한 풍경과 무정형의 허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활발한 창작과 더불어 최근에는 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한 「오정희 문학앨범」(웅진출판간)도 나왔다. 시인 김혜순씨가 연대기로 「완구점여인」에서 「새」까지의 작품과 작가의 개인사를 조망한 글을 실었고, 평론가 우찬제씨가 「텅 빈 충만, 그 여성적 넋의 노래」를 제목으로 완결된 구성력, 여성의식의 꼼꼼하고도 유려한 표현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을 해설했다.
또 작가와 남다른 교분을 가졌던 이제하, 이경자씨가 작가 초상을 산문으로 써냈다.
「긴 흐름의 소재를 소화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감과 「글쓰기체질」 때문에 30년 가까이 소설을 쓰면서도 아직 장편을 낸 적이 없는 그는 『요즘 젊은 작가들은 무거운 것을 무겁게 드러내지 않고 가볍고 메마르고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표현과 문체로 소화해 내는 것같다』면서 「사람살이의 아픔」을 말한다는 면에서는 다를 바 없지만 자신은 아직도 고전적인 글쓰기에 매달린 사람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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