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에 최초로 만난 예술가는 어느 무명 조각가였다. 경상도 어디에선가 흘러온 얼굴이 약간 얽은 30대 후반의 남자로 상여를 꾸미는 처가에 얹혀 살았다. 그는 한가할 때면 아이들에게 이것 저것 만들어 주기를 좋아하였다.상여를 꾸미고 남은 나무로 말, 개, 사슴같은 모양을 빼어나게 만드는가 하면 상여꽃 물들이는 염색안료로 화조화도 곧잘 그렸다. 학교가 파하면 나는 그의 곁을 맴돌곤 했다. 볼품없는 나무가 그의 손 끝에서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학이 되고, 달리는 말이 될 때면 어린 나는 한숨을 짓곤 했다. 하늘, 바람, 강, 나무가 모두 맑고 깨끗했던 시절이었다.
『재밌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뜻밖에 조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석아. 이기는 마 암 것도 아닌기라. 예술에 비하면…. 이까짓건 마 장난으로 허는 기지』 그의 목소리엔 자못 쓸쓸하고 비감한 그 무엇이 실려 있었다.
그는 아마 상여 꾸미는 일보다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범접 못하게 높고 그윽하고 가슴 시린 그 어떤 대상을 우러르듯 그렇게 「예술」을 설명해 갔으니까. 그러나 그 시절엔 예술가라는 것이 미처 직업이 아니었고 더구나 그런 시골에선 아무도 어떻게 해야 그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도 몰랐다. 동네를 이사 가던 날 그는 우리를 불러 선반 위의 조각품들을 선선히 나누어 주어 버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 정성스럽게 만든 것들이었지만 아마 자기 생각에 예술적 고뇌가 없는 것들이어서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간 동으로 서로 쏘다니며 숱한 미술가들을 만나 보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이처럼 「뛰어난 손」을 가진 어떤 예술가도 만나 보지 못했다. 그 순수성과 진솔함에 있어서까지도.
어디까지를 미술이요 예술이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를 만큼 조형의 무정부주의와 테러리즘이 난무하고 있다. 불나방처럼 오직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각적 자극만을 좇는 이 허망한 시대의 한 귀퉁이에 서서 문득 그 옛날 그 무명 예술가를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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