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 “완전 실패·장황하고 지루”/슈피겔지 표지엔 책 찢는 사진까지/장벽붕괴·통독 배경… 거센 공방이 되레 선전효과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67)의 신작 장편이 독일 평론가들과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집중조명이 본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것같다. 「양철북」으로 널리 알려진 귄터 그라스는 7백84쪽에 이르는 새 소설 「광야」(EIN WEITES FELD·슈타이들사간)를 지난달 28일 괴테의 출생일에 맞추어 출간했다.
그러자 평론가들은 「세기의 소설」이라던 광고와 달리 지루하고 읽기 힘든 작품이라며 비난을 하고 나섰다. 특히 당초 이 소설을 발췌, 게재하기로 계약했던 시사주간 슈피겔지는 소설 사본을 받아보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비평가 마르첼 라이히 라니키를 내세워 8월21일자에 그라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싣고 이 소설은 「완전한 실패」라고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라이히 라니키는 이어 24일 자신의 문학프로그램에서도 이 말을 반복했다.
또 평론가 울리히 바론은 가톨릭주간지 「라이니셰 메르쿠어」에 기고한 글에서 「이 작품은 정말 짜증나게 하며 장황하고 지루하고 구식 훈계로 가득 차있다」고 혹평했고 욘 루푸스라는 평론가도 일요주간신문 「벨트 암 존탁」을 통해 「3분의 1은 재미있지만 3분의 2는 지루하다」고 비슷한 견해를 표시했다.
슈피겔지는 라이히 라니키의 공개서한이 실린 호의 표지에 라이히 라니키가 그라스의 소설을 찢는 합성사진을 싣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그라스는 『책을 찢는 장면을 표지로 내는 잡지에 글을 싣고 싶지 않다』며 슈피겔에 자신의 인터뷰를 싣지 말라고 요구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정적 비평이 압도적인 가운데 평론가 헤르베르트 글로스너는 일요주간신문 「존탁스블라트」에서 「그라스는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 이래 가장 개성있는 인물인 폰티를 창조해 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소수이긴 하지만 동조하는 사람들도 더러 나타나고 있다. 평론가 지그리트 뢰플러는 쥐트 도이체 차이퉁지에 「넓은 들판, 넓은 전장(전장)」이라고 봇물처럼 터지는 비평 자체를 꼬집기도 했다.
「광야」는 베를린장벽 붕괴와 독일통일을 배경으로 한 소설. 중심인물은 동독국영기업의 민영화 관장기구 「트로이한트 안슈탈트」에서 일하는 동독출신 사환 테오부트케(「폰티」)이다. 그라스는 이 인물처럼 19세기 독일의 소설가였던 테오도르 폰타네의 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라이히 라니키는 그라스가 폰타네의 스타일을 지나치게 모방하다가 제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바론도 『그라스가 폰타네의 옷 속에 갇혀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작품을 둘러싼 공방이 소설의 문학적 성취와는 관계없이 대단한 선전효과를 가져와 벌써 10만부가 넘게 책이 팔렸다.<파리=송태권 특파원>파리=송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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