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고승 김교각 출생·행적논쟁 재연/관동대 박태근 교수 출생연도 의문 등 근거/기존 신라왕자설 부인 왕족설 주장중국 4대 명찰의 하나인 안후이(안휘)성 칭양(청양)현 구화산 화성사에 등신불로 모셔져 지장보살의 현세 화신으로 추앙받는 신라 고승 김교각(696∼794)스님의 출생과 행적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박태근 관동대 교수는 최근 「김지장의 전기에 관한 새로운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지금까지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김교각스님의 신라왕자설」을 부인하고 「왕족설」을 주장했다.
지장보살은 석가 열반후 미륵불이 올 때까지 무불시대에 중생을 구원한다는 유일한 부처. 24세때 법을 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건너간 김교각스님은 98세로 열반하기까지 갖가지 기적을 일으켜 중생을 구제했다. 항아리 속에서 가부좌한채 열반에 들었고 3년후 육신이 썩지 않고 지장보살의 화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발견돼 현세의 지장보살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스님이 입적한지 1천2백여년이 지나도록 출신가계와 행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교각스님이 누구인가를 처음 밝힌 학자는 83년 중국 지린(길림)성 사회과학원 조선연구소 유영지 교수. 당나라 기록인 「구화산화성사기」에 나오는 「신라왕자 김씨근속」이라는 8자를 토대로 그는 스님이 696년에 태어난 신라 성덕왕의 맏아들인 김수충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김수충이 당나라에 건너간 사실외에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는데다 성덕왕의 서자였던 그가 왕위계승에서 밀려나 출가한 후 중국으로 갔을 가능성 때문에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김수충의 출생연도가 696년일 경우 경덕왕이 13세때 그를 낳았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에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신문왕의 둘째 아들인 보질도태자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박교수는 『「신라왕자 김씨근속」은 왕자와 왕족이라는 신분을 나타내는 단어가 반복된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라며 『자자는 지자의 오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김교각스님은 신라의 왕족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같은 근거로 중국 고승의 행적을 기록한 송대의 「고승전」이 스님을 왕족이라고 기록한 점을 들었다. 그는 또 스님이 현종의 명을 받아 안녹산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쓰촨(사천)성 청두(성도)시에 대성자사라는 절을 창건한 기록을 찾아냈다며 이 기록은 구화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스님의 행적에 대한 비밀을 풀어주는 자료라고 말했다.<박천호 기자>박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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