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무장해제 싸고 양측 1년간 허송북아일랜드 내전당사자인 아일랜드공화군(IRA)이 반영 무장투쟁 중단을 선언한지 31일로 1주년이 됐다.
이 휴전으로 25년간에 걸친 벨파스트의 총성은 일단 사그라들었다. 또 이를 계기로 영국과 아일랜드는 IRA의 정치전위조직인 신 페인당이 참여한 가운데 북아일랜드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목표에는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한 채 불안한 평화만 유지하고 있다. 협상 답보의 주원인은 상호간에 오랜 불신 탓이다.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음에도 불구, 영국령으로 남게된 북아일랜드인들의 독립열망은 식민통치세력인 영국의 탄압에도 결코 꺾이지 않았다. 대규모 런던데리 독립요구시위가 영국군에 무력 진압당한 이듬해인 69년 무장항쟁 결사체인 IRA가 결성되며 교도들인 북아일랜드인들의 대영투쟁은 더욱 조직적이고 군사적으로 전개됐다. 영국이주민인 신교도는 물론, 영국본토를 대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폭탄테러와 암살로 휴전이 선언되기 전까지 줄잡아 3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면 영국은 식민통치방식을 답습했다. 테러주의자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아래 협상의 전제로 무기를 버릴 것만을 요구했다. 81년에는 「철 나비」로 불리던 마거릿 대처 총리가 대화거부입장만을 고집,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던 보비 샌즈등 IRA 단원 10명이 그대로 숨지게 방치, 세계여론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영국의 이러한 입장은 IRA측이 휴전을 선언한 지금도 변함없다. IRA의 진심을 엿보기 위해서는 무장해제만이 유일한 방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대해 IRA는 무장해제는 완전한 항복과 다름없다며 이를 일축하고 있다. 지난 2월 영국과 아일랜드 양국이 합의한 평화안에 의하면 북아일랜드장래는 지역주민 다수의 의사를 반영한다고 명시했다. 1백50만명의 북아일랜드인중 영국계 신교도가 60%를 점하고 있는 마당에 양측 모두가 도출된 결과에 승복할 지는 미지수이다. IRA가 잠잠해진후 목소리를 높이는 측은 오히려 협상에서 소외될까 우려하는 영국계 신교도들이다.
하지만 낙관적 기대도 높아간다. 애초 불가능해 보였던 휴전이 1년이나 지속되고 IRA 정치범들이 대거 석방되는 것을 보면서 양측 주민들의 가슴안에 평화에 대한 갈망이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윤석민 기자>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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