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강조하는 「세계화」정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활로는 세계무대로 뻗어나가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아무리 정치를 잘 하고 경제를 발전시켜도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 요즘 여러 복잡한 사건들이 터지고 지리멸렬, 니전투구의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상당부분 궁극적으로 인구과잉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산아제한을 한다 해도 인구증가는 불가피하며, 앞으로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은 증폭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도피책으로 해외로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민족도 세계시민으로서의 생존의 의미를 새롭게 가다듬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인이 세계무대로 진출하지 못한채 국내적 세계화만 강조한다면 우물안에서 용쓰는 개구리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손실로 연결되는 바 적지 아니할 것이다. 진실로 세계화라면 한국인의 힘이 세계무대로 확산되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가장 궁금하고 미흡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교민정책이다. 아다시피 현재 한민족은 남한에 4천5백만명, 북한에 2천5백만명, 그리고 5대양 6대주 90여개국에 5백만명이 살고 있다. 이것을 모두 합쳐 한민족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해외교포에 대하여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왔는가를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년 지나면 해외이민사 1백년을 맞게 되는데, 정부가 해외이민정책을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는가 매우 의심스럽다. 오히려 90년전 한말의 하와이 이민에서만큼도 적극적이지 못하게 정부는 해외이민을 소극적 방관적으로 임해왔다 해도 잘못이 아닐 것이다.
이민은 어쩌면 국내에서 못 살고 문제있는 사람이나 가는 것인양 생각하고, 자기 재주껏 나가면 적당히 영사업무나 봐주면 되는 것으로 여겨왔다. 지금까지도 교민정책을 외무부의 재외국민영사국 재외국민과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관련업무는 부처별로 분산되어 체계적인 수행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업무를 조정하기 위해 외무부차관이 주재하는 「재외국민정책 심의위원회」가 있으나 유명무실하여 회의조차 제대로 개최되지 않았다고 한다. 왜 외국에서처럼 교민처나 교민청 정도를 두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이에 관해서는 외국의 사례와 직제를 비교검토하면 발전적 방향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각 부처끼리의 이기주의가 작용했을 것이지만, 한민족공동체가 나아갈 활로가 「세계화」에 있다고 확신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 법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그런 것도 하지 아니하고 국민들에게 세계화만 강요한다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사실 해외에 나가보면, 조국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무 미약하고 멀게 느껴진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조국이 잘 되어야 교민도 잘 되는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국내에서 살기가 좋아진다고 역이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기뻐할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해외에 한국인의 두뇌와 재주, 근면한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분야들이 있는데 좁은 땅덩어리로 기어 들어오는 것이 편하다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한 마디로 정책부재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해외고급두뇌를 유치한다고 특별채용하거나 국내 대학에 상당한 대우로 배치하려는 정책이나,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아니하니 고위 퇴직공직자들이 애용하는 난센스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검토해보아야 할 일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돈 좀 번다고 「제2의 유태인」이라는 말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아직도 유태인들처럼 고급지식인집단에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들이 버리고 간 막노동을 맡아 할 뿐이다. 세계 도처에 일본이 명소를 잡아 상징물과 문화시설로 세계인들에게 선전적 효과를 행하고 있는 사례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도 질에서나 양에서 세계에서 강력한 소리를 내려면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 길을 결코 하루아침에 갈 수는 없지만, 그것을 위한 실천의 방향만은 바르게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민정책이야말로 지금처럼 물고 뜯는 국내정치에 휩쓸려갈 시간에 가장 심각히 재정립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해방 50주년을 맞아 한민족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통일을 지향하면서 이제 우리도 안으로는 너그럽고 밖으로는 눈을 크게 뜨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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