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크고 작은 실내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벽지가 마음에 안들어서 도배를 새로 하는 경우는 아주 가벼운 공사에 속하고, 욕실 부엌 바닥 천장등의 자재를 모두 새로 바꾸는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집도 적지않다.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붙박이 가구들과 욕조 변기 싱크대 전등 타일 벽지등이 무자비하게 뜯겨 쓰레기로 버려지는 현장을 보면 물자를 이렇게 낭비할 수 있는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물자 낭비 뿐 아니라 공사를 하는 소란도 보통 일이 아니다. 입주가 시작된 중대형 평수의 아파트 단지는 집집마다 벌리는 공사로 몸살을 앓곤 한다.
건설교통부는 9월부터 분양되는 모든 아파트의 내장재에 선택사양제(옵션)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입주자들은 문 전등 타일 벽지 싱크대 욕조 세면대등을 기본형으로 할 것인지 더 고급제품으로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또 그중 몇 품목을 자기가 공사하고 싶으면 마이너스 옵션으로 하고, 분양가에서 기본형 비용을 공제받을 수 있다. 베란다 섀시는 시공업체가 신청받아 일괄설치할 수 있게 됐는데, 이 모든 조치는 매우 때늦은 것이다.
거액의 공사비를 들여서 아파트를 호화롭게 고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으나, 자기가 살 집을 취향에 맞게 꾸미겠다는 욕구는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건설회사들은 입주자의 취향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호황을 누려왔고, 아파트 분양제도는 철저하게 건설회사 위주였다. 뜯어 버리고 싶은 붙박이 가구들을 끼워 팔아도 입주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내장재의 옵션 뿐 아니라 실내 설계의 다양화도 시급한 과제다. 그동안 실내구조를 바꾸는 공사가 성행하여 문제가 되었는데, 안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벽들은 가변형으로 처리하여 방의 숫자나 크기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족수가 많든 적든 방의 숫자를 고정시키는 판에 박힌 설계를 더 이상 강요해서는 안된다.
주택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부동산 투기가 성행했던 지난 삼십여년 동안 건설회사들은 자기 편한대로 집을 지어 강매를 해왔다. 그런 풍토에서 아파트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건설교통부는 이제라도 아파트 분양제도를 과감하게 입주자 위주로 전환하여 업체들로 하여금 품질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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