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겨진 도시인의 자기도취무서운 신인이 한 명 등장했다. 올해 초 「리뷰」 봄호에 단편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 등단했고 최근 「문학동네」 가을호에 「나는 아름답다」를 발표한 김영하가 바로 90년대 우리 문단이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무서운 아이」다.
이 젊은 작가의 가능성은 다음 세가지 점에서 찾아진다. 첫째, 후기산업사회의 몰락과 붕괴를 첨단의 도시적 감수성으로 날카롭게 포착 해부한다는 점. 둘째, 악마적 관점에서의 세상읽기를 통해 인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심연을 여지없이 폭로해낸다는 점.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감각적 측면에 매몰되지 않고 아직 미진하긴 하지만 현상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성찰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는 점등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전형적인 신세대 작가이지만 현재 문단에 포진하고 있는 신세대작가들이 결여하거나 간과하고 있는 어떤 것을 갖추고 있는, 그래서 우리 문학의 지평선을 한 단계 더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작가이다.
단 2편의 단편소설밖에 발표하지 않았으므로 이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은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가의 문학적 탐험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예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거울에 대한 명상」과 「나는 아름답다」라는 두 편의 작품이 공통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나르시시즘적 증후군이다. 김영하는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인간형이 현재 우리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탐구하고 있다.
「거울에 대한 명상」에선 강변에 버려진 승용차 트렁크에 들어갔다가 갇혀버린 남녀가 어두운 공간 속에서 벌이는 무미건조한 성희와 대화를 통해 우리시대의 불모성과 왜곡된 인간관계를 예리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또 「나는 아름답다」에선 한 사진작가가 여행중에 우연히 만난 한 여인과 하룻밤을 같이 지새면서 자신이 목표로 했던 죽음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간의 착잡한 뒤엉킴을 보여준다. 이 두 편의 소설은 모두 이미지의 포로가 된 현대인의 자기도취·자기기만을 섬뜩하게 발가벗기고 있다. 나르시스트의 자기도취는 순식간에 자기증오로 뒤바뀔 수 있으며 현대인의 자기에 대한 배려 밑에는 자기에 대한 경멸이 숨어 있음을 이들 작품은 말해준다. 나르시스신화가 암시해 주듯 거울의 유혹은 죽음에의 초대이다. 타자를 자기 이미지를 투영하는 반사경으로만 여기는 현대인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자리는 자멸일 뿐이라는 점을 그의 작품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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