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악의 수해를 입은 충남 예산군 삽교천과 무한천유역. 이 일대 주민들은 최근 며칠동안 하천범람의 악몽에 시달렸고 장대비가 그친 뒤에는 폐허처럼 변해버린 농경지와 마을 주변을 돌아보며 비탄에 빠졌다.지난 79년 10월26일 대통령이 참석해 삽교방조제준공식을 하던 날, 정부는 『앞으로 삽교천 유역에서 홍수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8년후인 지난 87년 대홍수로 삽교천과 무한천 제방 2백여가 터지며 이 지역 농경지와 집들이 급류에 휩쓸려버렸다. 당시 정부의 「철저하고 항구적인」 복구작업지시에 따라 군당국은 제방 전체를 재점검, 상습범람구간의 둑을 1가량 높게 쌓고는 『이젠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었다. 또 8년이 지나 이번 폭우에 수십의 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정부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열심히 농사를 지은 무식한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주민들은 아예 할 말을 잃었다. 아직도 강처럼 황톳물이 넘실대고 있는 침수된 논밭과 집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굵게 주름진 눈가에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이 스며있었다.
언제 폭우가 쏟아졌냐는듯 맑게 갠 날씨속에 도로 곳곳에서 군인과 공무원까지 동원돼 끊어진 길을 잇는 복구작업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완전히 물바다로 변한 농경지는 속수무책 상태였다. 곳곳에서 삽을 들고 물빼기를 시도하다 포기한채 돌아나오는 농민들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흥분한 일부 농민들은 연일 예산군청에 몰려가 사전 대비책을 소홀히 했다며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큰 수해때면 언제나 그런것처럼 또 얼마를 주고 우리를 위로할 생각은 마시오. 이번에야말로 정말 항구적인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정부는 군청 공무원들에게 던진 농민들의 외침을 심각히 새겨야 할 것이다. 논밭과 집이 물속에 잠겨버린 가운데서도 농심은 당장의 삶의 방책보다도 구멍뚫린 정부의 수방책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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