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잇따라 내놓은 백서를 보면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내실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도 이들 통계는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추구해온 불균형발전정책의 결과이겠지만, 성장은 주로 경제적인 데 국한되었고 삶의 질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이것을 모두 정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원인의 상당부분은 정부의 사회복지부문의 지출이 턱없이 적었던 것과 정부의 규제가 적절하지 않았던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정부의 각종 정책들이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한다. 신자유주의의 모토는 『국가는 작게, 시장은 크게』다. 부분적으로 국가의 역할이 인정되지만 문제해결의 열쇠를 쥔 것은 경쟁과 교환을 원리로 하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 이래, 특히 공산권의 몰락 이래 전세계적인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진국에서의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가 위기를 맞으면서 등장한 이념이라는 점이다. 2차대전 후에 정착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는 폐쇄된 국민경제안에서 주로 사회적 임금 지불과 사회보장 지출과 같은 총수요관리를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대량소비를 촉진함으로써 자본의 지속적 축적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담보해 왔다.
한동안 이상으로 보였던 복지국가는 그러나 국가의 재정적자와 노동공급의 경직성으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되었고 세계화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경제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서구의 신자유주의는 국가역할이 지나치게 비대한 데 대한 반작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정은 판이하다. 그동안 사회복지분야에 대한 투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상태에서 국가역할의 일괄적인 축소는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이 국가를 대신하여 상당한 정도의 사회보장을 제공했기 때문에 국가가 뒷전에 물러나 있어도 무방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급격한 핵가족화로 더 이상 가족제공의 복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의 경쟁상대국들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로 전환한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이 추세에 부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단계를 거치지 않은 우리로서는 사회복지분야에서 국가의 역할이 어느 정도는 지금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환경등과 같이 시장에 의존해서만은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탈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규제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더 큰 시장」만이 아니라 부문에 따라서는 「더 큰 국가」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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