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산… 끊긴 길… 마을은 섬처럼/“태풍 약화 그나마 다행” 안도의 한숨최고 6백여㎜가 넘는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만신창이가 된 충청·경기 중부지역은 26일 태풍 재니스가 예상보다 적은 비를 뿌려 큰 피해는 면했으나 불어난 물로 육지속의 섬으로 변하고 말았다. 특히 물난리가 극심했던 남한강, 삽교천 일대는 집중호우가 할퀴고 간 상처로 농경지와 도로, 마을이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농민들은 이삭이 팬 벼가 물살에 쓸리는 황톳빛 평야를 망연히 바라보며 가장 긴 하룻밤을 지샜다.
【여주=김호섭 기자】 애써 키워온 벼포기와 보금자리를 한꺼번에 삼켜버릴 것 같은 거대한 황톳빛 바다. 남한강 범람우려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여주군 주민들은 26일 한때 낮아지던 수위가 재니스가 접근하면서 하오부터 다시 불어나고 비가 내리자 마을전체가 「물바다」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가슴 졸였다.
한때 상판 위까지 물이 넘치던 남한강 여주대교 수위는 이날 상오 9시께 8.6m까지 내려가 소형차량통행이 재개됐으나 하오부터 충주댐의 방류량이 늘면서 수위가 약간 올랐다. 『한고비를 넘겼다』며 놀란 가슴을 쓸며 집에 돌아와 물을 퍼내던 주민들은 다시 초조하게 기상예보에 귀를 기울이다 많은 비는 내리지 않자 다소 안도했다.
남한강변 능서면 번도리와 내양리, 점동면 삼합리는 지천인 양화천과 삼합저수지가 넘쳐 마을이 섬처럼 고립됐다. 금사면 이포리에서는 농민들이 배를 타고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와 축사등을 둘러봤다. 농민 차복성(68)씨는 『이삭이 팬 벼는 흙탕물에 잠기면 쌀 한톨도 건질 수 없다』고 한숨지었다.
【예산=전성우 기자】 삽교천유역 충남 예산과 홍성지역은 온통 황톳빛이었다. 물 위로 드문드문 올라온 비닐하우스 지붕과 전봇대만이 이곳이 농경지와 도로였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쯤 초록색으로 넘실돼야 할 홍성군 금마평야도 물에 잠겨 검은 물살만 출렁거렸고 인근 홍북면과 예산군 응봉면등의 농경지도 마치 저수지로 변한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특히 삽교천 상류인 무한천의 범람으로 예산군 신암·오가면의 농경지 대부분과 주택, 건물 절반 이상이 물에 잠겨 폭이 몇배 넓어진 무한천은 한강이나 금강을 연상케 했다. 차동고개 말티고개를 비롯해 공주와 예산을 잇는 도로 곳곳이 산사태로 매몰됐으며 예산―온양 46번국도에서 합덕으로 갈라지는 4거리는 도로유실로 가드레일과 신호등이 뒤로 벌렁 자빠진 채 물에 잠겨 마치 폭격을 당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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