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대통령이 4년재임중 가장 득의의 과업은 1991년 1월 유엔결의를 근거로 이라크를 공격,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이었다. 중동의 새 강자로, 이웃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세인의 도전을 일격에 분쇄, 초강대국의 면모를 과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2차대전이래 첫 승리를 안겨주자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이어 부시는 미국주요도시에서 승전자축회를 열어 연설과 시낭독, 국가합창으로 애국적 분위기를 고취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극심한 경제불황등 부시의 내정실패에 반발함에 따라 90%까지 치솟던 부시에 대한 인기―지지율은 40∼30%로 곤두박질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부시는 베이커국무장관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기용하고 인기만회를 위해 갖가지 경기부양책을 냈으나 결국 대선에서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이」라고 비난했던 클린턴에게 낙선, 연임에 실패했던 것이다.
건국후 역대대통령중 2년반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김영삼(김영삼)대통령처럼 많은 일, 그것도 파격적인 개혁조치를 단행한 대통령도 없을듯싶다. 한국(병)치유의 일환으로 단행한 공직자재산공개, 금융·토지실명제, 군개혁, 정부조직개편, 돈안드는 선거와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법완성 등은 가히 혁명적 조치였다. 비록 전격방식이긴하나 과감한 개혁조치에 국민들은 90%가 넘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토록 많은 일을 하고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김대통령정부가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민자당부설 여의도연구소의 분석대로 패배는 예견된 일이었다.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민심, 특히 상당수 중산층이 흔들리는 국정운영에 실망하고 진작부터 등을 돌렸지만 청와대와 여당만이 몰랐던 것이다.
민심이반의 원인으로는 일방독주식의 개혁과 국정운영, 정부의 지나친 자만심, 잇단 대형사고와 함께 잘못된 수습에 따른 관리미숙, 인사실패, 거대 여당의 무기력, 일관성없는 대북정책등을 꼽을 수 있다. 대형사고의 연발로 불신과 좌절감을 준 것도 문제지만 엉성한 수습에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를 했음에도 여전히 규제왕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게한 공무원들의 눈치보기등 역시 불신의 원인이 된 것이다. 지방선거의 경우 멀어진 민심을 끌어들이기는 커녕 「결국 우리를 선택할 것」이라는 안이한 선거전략으로 실패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김대통령이 개혁과 변화추진에 있어 시행착오와 미흡했던 점을 시인하고, 「대화합을 통한 큰정치」를 내걸며 후반 2년반의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진력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임기후반은 어려운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당이 자초한 소위 후3김 정국구도하에 변화와 개혁도 지속해야하고 내년 총선에 이어 후계자를 골라 97년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일이다. 그러나 성패의 열쇠는 민심을 잡는데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반임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정운영스타일을 전적으로 바꿔야한다. 전격발표·조치를 통해 무조건 따라오라는 일방통행식은 금물이다. 개혁내용과 시간표를 소상히 알려 공론화를 거쳐 겸허한 자세로 민의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 또한 개혁은 단기간의 성과보다 먼 장래를 내다보며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새개혁을 건수주의로 벌이기보다 이미 단행한 조치들은 내실화하는데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다음 모든 요직인사에 있어 보다 신중한 적재고르기와 임명이 중요하다. 잦은 인사도 그렇고 어떤 사태를 보직 인사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신뢰감만 낮게 할 뿐이다.
끝으로 문민정부출범이후 행정쇄신과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공무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음에도 여전한 눈치보기속에 행정의 생산성이 저조한 점 역시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엎드린 공무원들을 하루빨리 일으키고 장관등 고위직들이 청와대만을 쳐다보는 풍토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집권후반기를 맞아 김대통령이 펼칠 국정수행스타일과 내용을 주목하고 있다. 인기와 지지율이란 언제나 물거품같은 것이다. 때문에 국민들은 대통령이 재임중 거창한 것을 애써 남기기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 후세 역사의 평가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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