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피에로의 몸부림(천자춘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피에로의 몸부림(천자춘추)

입력
1995.08.26 00:00
0 0

연극은 시공예술이다. 막이 내려지고 공연이 끝나면 시간 공간과 함께 영원히 허공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예술인 것이다.미술이나 문학이나 음악과 같은 타 예술은 그림이 남고 글이 남고 악보가 남지만 연극은 남는 것이 없다. 남는 것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공연이 되었다는 짤막한 기록과 함께 프로그램 한 장만 덩그러니 남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10년이나 20년 후인 지금에 와서 보면 누렇게 퇴색된 종이 위에 찍혀져 있는 자신의 얼굴모습이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곤 한다. 인쇄술의 탓도 있겠지만 급템포로 변화돼 가는 유행 때문에 그 모습은 꼭 무슨 현상금이 붙어 있는 범죄자의 얼굴같기도 하고, 아니면 귀순한 벌목공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 치고는 정말 허망한 예술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필자는 틈만 있으면 글을 쓰곤 한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4권의 희곡번역집과 3편의 번역소설, 2편의 창작소설, 그리고 3권의 수필집까지 합쳐 12권의 책이 출판되어 나왔다.

어느 유행가가사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 인간은 모두 다 나그네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이 필자 역시도 한국이라는 이 나라에 잠깐 여행을 와 있는 한 사람의 관광객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비자기간이 끝나면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본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동안 필자는 연극을 한답시고 혼자 도도한 척 연극계에 남아 있느라 그 긴 세월동안을 정말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왔다. 돈도 남들보다 못 벌었고 이 나이가 되도록 장남의 구실은 커녕 부모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살아온 인생이다. 프로그램 한 장밖엔 남는 것이 없다는게 더욱 억울하고 허전한 생각이 든다.

그 허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필자도 한때 이 세상을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다는 확실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피에로의 슬픈 몸부림일진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이진수 연극배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