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한상진교수 세계문화현장 탐방기/다양한 삶녹여 새 가치 만드는 힘/다인종국가 독창성 약해도 합성·재생력 탁월/한국에도 관심고조… 우리것 알릴 호기활용을미국하면 우리는 거대한 땅 덩어리, 풍부한 지하자원, 세계 최강의 군사력,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연상한다. 그러나 미국은 동시에 문화대국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이번 현지 탐방을 시작했다. 미국은 흔히 독창적인 문화가 없다고들 한다. 대중문화는 번창하지만 중국이나 유럽에 비해 역사와 전통의 무게가 없다. 일리노이 켄터키 미주리주 등 중서부 지역을 표준으로 하는 평균적인 미국 시민의 지적 능력이 높다고 볼만한 이유도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의 생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단일민족”에 시큰둥
88년 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당시 우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고 학생들의 통일운동이 절정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때 나는 방학을 이용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어느날 저녁, 유명한 위르겐 하버마스 선생이 세미나를 마치고 대학원생들과 함께 인근의 카페에서 뒤풀이를 하는데 , 한국의 상황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 때까지만 해도 독일이 곧 통일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생들의 민족운동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하버마스는 대뜸 나에게 한국의 민족 구성에 대해 물었다. 나는 매우 자랑스럽다는 듯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며 높은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표정은 별로 신통치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소 당황했다. 그는 단일민족 국가는 배타적이기 쉬우며 여러 민족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기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의 시대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나에게 충격이자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 뒤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1년 반 강의하게 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뉴욕은 내가 유학생활을 했던 중서부 미국과는 전연 다른 세계였다. 황폐한 슬럼이 맨해튼의 중심과 북부에 넓게 퍼져있는 반면, 남쪽의 월스트리트는 깔끔하고 매력적인 젊은 남녀의 꿈과 야심이 무르익는 본고장이었다. 도시의 양면성이라 할까. 날카로운 인종분규, 불균형 발전, 이로 인한 삶의 위협이 금방 피부에 다가오는 곳이었다.
그러나 45번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타임스퀘어나 50번가의 록펠러재단 같은 데서 보면 뉴욕은 그야말로 세계의 축소판과 같은 곳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비슷한 사람을 찾기가 불가능할만큼 피부색이며 용모 표정 관심이 각기 달랐다. 이것은 진정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토록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같이 어울려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국의 인재들 몰려
미국은 원래 유럽에서 종교의 박해를 받던 집단이 양심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와 만든 나라이다. 그만큼 종교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차이에 대한 관용이 건국의 도덕적 기초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연방국가의 확립 과정에서 남북전쟁이 터졌고 인디언 원주민이 거의 몰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아프리카로부터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문제와 함께 인디언 원주민의 비참한 운명은 앵글로 색슨 미국인들이 잊고 싶어하는 원죄의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각지로부터 모여든 이민들에 힘입어 활기차게 발전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으로 모여들었을뿐 아니라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이 계속 공급됨으로써 미국 자본주의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관습이 섞여 공존하는 지구촌 현상이 미국 안에서 일찍부터 싹트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미국의 엄청난 강점이 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독창적인 문화는 약하지만 「브리콜라주(Bricolage)」같은 합성과 재생의 문화 능력은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한 보기로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등은 원래 프랑스 지식인들이 주창했던 것이지만 미국 시장을 통하여 세계로 뻗어나갔다. 여기에는 예일대 프린스턴대 같은 명문 대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보스턴 지역의 명문 대학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세계에 확산시켰다. 종속이론도 미국이 남미로부터 수용하여 세계로 전파시킨 것이며 오늘날 일본 연구의 붐도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같은 명문대학이 주도한 것이다.
이 과정에 미국적인 관심 기준 취향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능력은 어쩌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문화의 수준과 표준을 강제하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배후에는 미국의 거대한 자본이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미국에 다양한 이민집단이 있고 또 미국 시장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문화가 미국에 상륙하여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의 어떤 것은 세계적인 것으로 솟아 오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한 미국 안에 다행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8월13일에는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뉴욕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7월 말 워싱턴에서는 한국전쟁 기념비를 제막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그 행사의 주제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였다. 미국은 냉전에서의 승리를 축하할 뿐 아니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올라서 오늘의 한국이 건설된 데 대하여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두 행사를 보면서 나는 미국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한국어 교재를
뉴욕의 가장 번화한 타임 스퀘어에서 북쪽을 보면 거대한 광고탑 안에 삼성의 전광판이 코카 콜라, 산토리 위스키, 보스와 함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장된 경제력을 상징할 것이다.
문화 분야에서도 좋은 징조가 보인다. 국제교류재단이 미국 명문대학의 한국학 석좌 교수와 강좌 지원을 대폭 늘렸기 때문에 그 효과가 점차 드러날 것이다. 미국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치르는 수능시험(SAT) 과목에 한국어가 포함될 수 있도록 삼성이 5백만달러를 미국의 권위있는 교육평가 이사회에 기증한 것도 썩 잘한 일이다. 이로써 미국안의 수많은 교포 2세, 3세들이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할 것이며 국제적인 표준에 맞도록 한국어를 가르치고 이용하는 교재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근 반이민법 등 미국 안에 일고 있는 혼돈을 보면서 나는 19세기적인 부국강병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국가의 비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국어 교육에 헌신적인 교사들로부터 제발 좋은 자료를 만들어달라는 호소를 들었을 때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은 급증하고 있지만 오늘날과 같은 입체적인 영상매체의 시대에 창덕궁 사진을 배경으로 무미건조하게 문화를 설명하는 따위의 비디오에 어느 누가 매력을 느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살아 움직이는 문화가 곧 국력이라는 새로운 생각에 눈을 떠야할 때가 되었다.<글=한상진 교수>글=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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