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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지식인/박명진 서울대교수·언론학(한국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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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지식인/박명진 서울대교수·언론학(한국 논단)

입력
199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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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외 할것 없이 정보미디어 산업계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공포에 가까운 긴장감이 생긴다. 마치 온 세계가 운전사 없이 질주하는 자동차에 몸을 싣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다. 그 미친 듯한 질주의 어느 한 순간에 엔진은 장애물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거나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 것같은 아찔함조차 생긴다.이 분야와 관련해서 입에 오르내리는 숫자만도 현실감이 없는 것이다. 일본 유럽 미국등 세 지역에서 1995년부터 2002년 사이에만 정보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총 5천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며 2010년까지 일본의 투자 예정규모는 멀티미디어 산업영역까지 포함, 5천8백억달러(4백64조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기술투자의 계획은 예전과 다른 논리를 가지고 있다. 『우선 건설하고 본다. 어떻게 쓸 것인지는 나중 문제다. 만일 우리가 건설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하는 서비스 역시 다른 누군가의 지배하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에 쓰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오로지 경쟁에 이기기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한다는 것이다.

지난 봄부터 한여름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불고 있는 미디어 정보산업 분야의 기업합병, 인수, 제휴등의 열풍도 현기증을 일으킨다. 5월에는 미국 3대 방송채널 중의 하나인 NBC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멀티미디어 분야의 진출을 위한 상호제휴를 발표하더니 월트디즈니사가 ABC방송을 인수, 전기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CBS를 인수, 타임워너의 워너 브러더스사가 공중파채널 신설, 파라마운트 공중파 네트워크 설립, 마이크로소프트와 터너의 지분 인수를 위한 협상 소식등이 숨돌릴 새 없이 들려온다. 유럽에서는 도이치 텔레컴, 프랑스 텔레컴, 미국의 스프린트등의 제휴가 발표되었고 IBM과 이탈리아의 전신전화와 합작, 로이터통신과 미국 벨 아틀랜틱, 나이넥스같은 전화회사 간의 VOD(주문형 비디오)공동진출 소식도 이어졌다.

결국 이같은 인수와 합병의 바람은 21세기 우리의 정신과 일상생활을 지배할 할리우드와 실리콘 밸리가 엄청난 보급망을 지닌 방송및 통신, 대자본과 메가톤급의 결합을 이루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같은 온갖 형태의 결합의 바탕에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이윤을 극대화하기 이외의 다른 목적과 배려를 발견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도 찾아 볼 수 없다.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기업이나 산업금융자본이 흠뻑 당하기만 하고 물러난 할리우드에 우리나라의 한 기업이 5억달러를 투자해서 신규진입한 소식이 전 해졌을 때 같은 실패가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그 엄청난 투자가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전체적 이익과 어떻게 상관있는지 따져보는 논의는 없었다. 단지 드림워크에 끼여 스필버그에게 돈을 대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라의 영광처럼 여기는 은근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라 안팎에서 금융과 경제의 논리가 과학과 기술발달에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면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기술도 집단적 가치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한에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공익의 이름아래 보호되었던 방송, 통신 분야들이 탈규제되면서 합병 제휴 인수 형식으로 뭉치고 거대한 멀티미디어 복합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공익, 사회복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보, 통신이라는 개념은 어느 틈에 실종되어 버렸다.

진보적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하고 실용주의에 압도되어 버린 오늘날 어느 누구도 이 맹목적인 질주를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중심을 잡고 기술사용을 포함한 모든 사회발전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향제시의 역할이 부여되어 왔던 지식인사회가 지리멸렬해져가는 것은 큰 문제이다. 기능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새로운 지식인, 그 대부분이 정보와 문화산업의 첨병인 신지식인층이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지식인들의 역할은 계속 위축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능적인 신 지식인들에게서 그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효율성과 기능성의 실현에 관심이 집중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에 산학협동만을 요구하기보다 순수한 인문사회적 연구와 전통적인 지식인의 역할을 존중하여 운전사 없는 자동차의 맹목적인 질주를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찾도록 해주는 환경조성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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