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가수시대 연 70년대 청년문화 대명사/「아침이슬」「세노야」 등 팬들의 가슴에 큰울림양희은(43)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순수한 생명력을 노래해 왔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김민기 작사·작곡·1971년) 긴>
서정과 메시지를 담은 노랫말, 맑은 음색, 밖으로 분출하기 보다는 내면으로 스며드는 절제된 감성, 여성 특유의 높은 옥타브이면서도 부담을 주지 않는 편안한 창법등이 그의 특징이다. 그에게는 또한 70년대 금지곡 행진에 동참한 진보적 가수의 자취가 남아 있다.
그런 이미지들이 그를 지금까지 팬들의 가슴에 큰 울림으로 머무는 가수로 만들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세노야」 「한계령」 등 수많은 노래들도 국민정서에 깊게 뿌리 내려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고통스런 성장기, 사랑의 아픔, 암과의 투병등 그의 순탄치 않았던 삶의 역정도 사람들의 가슴에 친숙한 기억처럼 스며들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양희은은 재수생 때 노래를 시작했다. 명동에 있는 포크음악카페 「청개구리집」. 함께 놀러간 친구가 장난삼아 「노래 잘하는 친구가 있다」는 쪽지를 사회자에게 주었다. 그는 불려나가 팝송 번안곡을 불렀다. 당시 기타반주자는 가수 서유석이었다.
서강대 사학과에 입학한 양희은은 청개구리집 무대에 자주 섰고, 김민기등의 노래를 발표하며 여학생 가수 시대를 열었다. 여학생 포크가수의 등장은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대변되던 70년대 청년문화를 뜨겁게 타오르게 했다.
『요즘 와서 부쩍 「양희은 노래」가 가지고 있는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관객의 눈빛과 눈물은 「청년기에 나누어 짊어졌던 시대의 무게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당시 김민기가 젊은이의 희망과 아픔을 노래로 옮겼다면 양희은은 그 노래에 생명을 불어넣어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침이슬」은 금지곡, 운동가요등 25년간 숱한 곡절을 겪고 이제는 국민 최고의 노래로 꼽힌다. MBC FM이 최근 조사한 「즐겨 듣는 가요 1백선」에서도 「아침이슬」은 1위를 재확인했다.
지난해 뒤늦게 데뷔 후 첫 콘서트를 연 양희은은 무대를 자주 마련한다. 이유가 있다. 『아물었든 그렇지 않든 상처를 가진 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들의 노래」가 된 내 노래를 많이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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