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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들의 죽음(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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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들의 죽음(장명수 칼럼)

입력
1995.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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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군 구성면에 있는 경기도 여자기술학원 기숙사에 집단탈출을 기도하는 원생들이 불을 질러 37명이 죽고 16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혹한 사고가 일어 났다. 사상자는 모두 13세에서 19세에 이르는 앳된 소녀들이다. 해진·영미·지은·지혜·경아·미희등 예쁜 이름을 가진 소녀들이 쇠창살로 막힌 창문과 밖으로 잠긴 비상구를 뚫지 못한채 숨졌다.윤락여성과 가출 소녀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선도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그 학원은 경기도가 기독교 재단에 위탁해 운영해 왔으며, 유흥업소에서 경찰 단속에 걸려 수용된 소녀들과 부모가 선도를 부탁한 문제아들이 뒤섞여 있었다. 사고현장에 달려온 부모들 중에는 『엄한 규율속에 기술을 가르친다기에 사람을 만들어 보려고 맡겼는데…』라며 통곡하는 어머니가 많았다.

타다 남은 소녀들의 일기, 부모와 주고 받은 편지에도 그런 아픔이 얼룩져 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전 지금 너무 힘들어요. 엄마에게 모든걸 말하고 싶지만 걱정하실것 같아 말을 못하겠어요…> 라는 일기, <사랑하는 딸아, 어젯밤에도 너의 꿈을 꾸었단다. 더 불행한 친구들을 감싸주며 참고 사는 지혜를 배우거라. 늘 좋은 생각 말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라는 엄마의 편지에는 탈선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는 몸부림과 그런 딸을 격려하는 애절한 모정이 담겨 있다.

엄청난 사고가 터진후 신문 방송들은 그곳이 재활선도시설이라기 보다는 「감옥」이었으며, 경기도의 감독이 미치지 않는 인권 사각지대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원생들은 아침 6시반에 기상하여 군대식 통제아래 기술훈련을 받았고, 저녁 7시만 되면 기숙사의 모든 출입문이 이중으로 잠겼으며, 건물주변에는 높은 철조망을 둘렀고, 견디다 못한 원생들이 도망치려고 전에도 불을 지른 일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한번 탈선하여 정규교육에서 탈락된 청소년들이 이런 「감옥」이외에는 갈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은 그 학원이 교도소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딸을 맡겼을 가능성이 높다. 윤락녀가 되는것을 방치하기 보다는 감옥에 가두는것이 낫다고 부모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교육개혁으로 교육과정과 시설에 대한 일률적인 규제가 풀리고 있는데, 청소년 교육시설도 보다 다양하게 개발돼야 한다. 우수한 학생들보다 더 숫자가 많은 낙오의 가능성이 큰 학생들을 주목해야 한다. 감옥이 아닌 정상적인 학원에서 기술을 배울수 있어야 한다. 가출소녀들의 떼죽음은 우리의 빈약하고 경직된 교육제도에 대한 아픈 경종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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