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인데 당시에도 환경오염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상태였다. 1946년 일본에서 발병한 이타이이타이병, 1952년 발생한 런던스모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197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는「오직 하나뿐인 지구」를 주제로 유엔인간환경회의란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성장 제일주의로 GNP 수치 올리기에 전 국력을 집중시켰다. 「더 크게, 더 빨리, 더 많이」를 구호로 성장만을 추구하다보니 불과 30년만에 3백년간 공업화과정을 거친 구미국가들보다 훨씬 더 나쁜 환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선차복 후차계」를 상기했어야 했다. 먼저 가던 차가 넘어지던 자리를 뒤따르는 차가 그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공업화는 추진하되 선진국이 경험한 잘못을 답습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업화와 환경정책을 동시에 추진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70년대 당시 정부는 공업화만 고집하면서 환경운동을 탄압했다. 80년대들어 정부는 뒤늦게나마 환경문제를 자각했고 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UNCED(유엔환경개발회의)이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민간운동이 새로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본다. 이미 때늦은 감이 있는 환경보호 측면에서의 환경운동은 서구중심주의 운동으로 방향을 잘못잡은 것이다. 또한 인간중심의 정책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까지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중심주의에서 사용한 말이다. 인간이 중심에 있고 그 환경인 자연(공기,물,식물,토지 등)은 인간을 위해 보호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보호정책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단히 미흡하다.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35억년전 지구에 처음 태어난 생명을 지구생명이라고 부른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이 생명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 파생된 생명을 보생명이라고 부른다. 지구생명에서 파생된 모든 보생명들은 그런 까닭에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 모든 생명은 모양과 생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세포로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생명은 동물이나 식물뿐이 아니라 무생물과도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는 동물이나 식물만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햇빛 물 공기 흙등을 포함해서 내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생명을 중심에 두고 모든 생명계 생태계를 하나의 생명공동체로 보고 생명공동체를 위한 운동과 정책을 펼쳐야 한다.<크리스챤아카데미원장>크리스챤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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