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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자체감사 파장막기 급급/지폐유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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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자체감사 파장막기 급급/지폐유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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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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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축소·은폐 흔적 역력/「뭉칫돈」 가능성불구 조사안해/보안체제만 믿고 안이한 대처한국은행 부산지점의 지폐 불법유출사건에 대한 경찰조사결과 사고금액이 당초 알려졌던 55만원보다 훨씬 큰 3억5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한은이 당시 사건을 축소·은폐하는데만 급급해 정확한 진상조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한은이 화폐 정사 과정의 보안체계가 철저하기 때문에 거액의 뭉칫돈을 빼낼 수 없다고 단언했음에도 이처럼 큰 돈이 별다른 어려움없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발권기관인 한은의 보안체계에 큰 구멍이 뚫려있음을 드러낸 것이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에 따라 김명호 총재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미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파장이 예상외로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당시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책임라인」의 후속문책이 불가피해졌고 추락한 중앙은행 공신력의 회복과 기강확립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됨은 물론 한은독립문제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재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한은의 대응이 왜 그처럼 미온적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은은 지난해 4월 부산지점으로부터 사건내용에 대한 보고를 처음 받고, 인사부와 발권부 감사실등의 직원 4명을 현지에 보내 자체 감사를 벌였다. 그러나 사건의 범인인 김태영(40)씨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는 하지 못한채 단지 지점장등 관계자들의 말만 듣고 조사를 마무리지었다. 김씨에 대한 조사는 김씨가 이미 도피중이어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한은은 사고금액이 55만원이라는 부산지점 보고내용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체 징계를 하는 선에서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 한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보안체계가 엄격하기때문에 그 이상의 거액을 빼내 갔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스스로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이를 선의로 해석하면 자신들의 보안체계를 믿어도 너무 믿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당시 정황을 짚어보면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한은이 당시에 사건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그처럼 사건을 서둘러 종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현재까지의 경찰 수사결과에 의하면 한은은 당시에도 범인이 거액의 돈을 빼내갔을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씨의 범행이 적발될 때 김씨가 훔친 돈이 5만원이었다고 한은은 보고했지만, 실제로 김씨는 세단기를 통해 7천2백65만원을 빼냈으며, 이중 급한김에 5만원만 주머니에 넣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처음 부산지점의 사건보고에도 포함돼있어 한은의 임원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한은은 세단기를 통해 거액의 뭉칫돈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음을 확인하고서도 추가조사를 게을리했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도 않았다.

또 당시 부산지점 정사과장이던 편봉규 과장이 범인 김씨가 1층 화장실에 숨긴 노트에서 훔친 돈과 빌린 돈등으로 주식투자를 한 내역이 고스란히 기재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이에 대한 추궁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같은 정황들로 볼때 한은은 사고규모가 당초 확인된 금액보다 훨씬 클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이같은 안이한 대응은 사건의 파장을 염려한 나머지 적당히 덮어두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게 금융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김상철 기자>

◎타지점은 과연 이상 없을까/자동정사기 맹점… 또다른 유출 가능

경찰조사결과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유출된 지폐액수가 3억5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렇다면 다른 지점은 이상없느냐』는 의혹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지폐 폐기과정에서 사용되는 「자동정사기」의 맹점을 악용하면 폐기용 지폐 유출은 흔적이 남지 않는 완전범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에 이같은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폐기용 지폐(연간 4조2천억원가량)는 한은본점과 11개 지점등 전국 12개소에 설치된 30대의 자동정사기를 통해 폐기처리되고 있다. 본점(4대) 서울강남지점(4대) 부산지점(4대) 대구지점(5대) 대전지점(4대)등에 가장 많고 나머지엔 대부분 1대씩이 배치돼 있다. 기계에 넣을 수 없을만큼 손상됐거나 테이프등이 붙은 지폐등은 펀치로 구멍내 바로 분쇄기에 넣어 폐기하지만 90%이상이 자동정사기로 폐기처리된다.

이들 자동정사기에 폐기용 지폐를 넣으면 유통 가능한 지폐와 사용 불가능한 지폐를 갈라주고, 사용불가능한 것으로 분류된 지폐는 자동으로 지폐를 국수가락처럼 잘게 분쇄하는 세단기로 넘겨 분쇄한다. 범인 김태영씨는 이 과정에서 정사기와 세단기 사이에 틈새를 만들어 세단기로 넘어가야 할 지폐를 틈새로 빠지게 해 빼돌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자동정사기와 세단기 사이에 틈이 생기면 정사기가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돼 있으나 김씨는 정사기를 조작해 계속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자동정사기는 이처럼 간단한 조작으로 지폐유출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유출된 지폐가 분쇄된 것으로 기록된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자동정사기가 설치된 자동정사실에는 24시간 상황을 녹화해주는 폐쇄회로 TV(CCTV)가 설치돼 있으나 한은 규정상 이 테이프는 1주일만 보관하도록 돼 있어 1주일 이내에 범행사실이 드러나지 않으면 범행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어진다. 테이프 보관기간은 조폐창사건 이후 한달로 늘어났으나 이번 부산지점 사건을 담은 테이프는 이미 폐기돼 확인할 수 없었다.

한은측은 사건발생직후 『보완이 철저해 55만원 이상 유출될 가능성이 없다』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관리규정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지폐가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이번 부산지점 유출사건으로 입증된 셈이다.<유승호 기자>

◎한은총재 인선구도에 변화/외부인사 영입될듯… 「한은맨」 타격

한국은행 부산지점 폐기용지폐 유출사고의 파장이 커지면서 후임 한국은행총재 인선구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김명호 전총재가 사퇴한 지난 주말만 해도 이번 사건은 「55만원짜리 좀도둑범행」이었지만 이젠 조직적 개입냄새가 짙은 3억5천만원규모의 초대형범죄로 커졌다. 엄청난 경제사회적 파장이 예상되는 대형범죄라면 이는 곧 사건의 원인이 한은측의 단순부주의 차원이 아니라 내부기강해이라는 치명적인 사실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결국 사태의 뒷수습을 맡을 후임총재는 「외부영입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기강이 풀어진 집단출신이 그 집단의 기강을 바로잡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게 일반적 정서이고 청와대나 재정경제원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당초 유력하게 거론되던 후임 한은총재는 대부분 「한은맨」들이었다. 은행감독원장을 거친 황창기 전 보험감독원장, 한은부총재출신의 김재윤 금융통화운영위원 이우영 중소기업 은행장 신복영 금융결제원장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오래전에 한은을 떠났지만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금융계인사로 부각되고 있는 장명선 외환은행장도 거명됐었고 유시열 현부총재의 발탁가능성도 점쳐졌었다.

그러나 사건규모가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지금 이 「한은맨」들의 총재등극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또 각각 ▲현정부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거나 ▲사건당시 한은현직에 재직했거나 ▲중앙은행총재가 되기엔 어쩐지 「객관적 캐리어」가 부족하게 보이는등 나름대로 「결격사유」가 지적되고 있다.

신경제 5개년계획을 입안했고 금통위원 금융연구원장 금융학회장 재무부장관등 금융계 주요요직을 두루 거친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도 개각과 맞물려 거론되고 있지만 본인은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또 정부관료출신은 한은법 개정문제가 걸린 상황에서 자칫 정부의 한은장악의도로 비쳐질 수 있어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이 점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은 박영철 금융연구원장이다. 5공말 청와대경제수석을 지냈다는 「전력」시비도 있지만 최근 금융연구원장직을 중임한 것을 보면 그 시비는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주요금융정책에 깊숙히 간여하고 있는데다 국내학자로선 드물게 국제지명도를 갖춘 금융통이다. 당국이나 민간금융계, 한은내부에서도 박원장에 대한 평판은 좋은 편이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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