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품목 「암행구매」 검사기간 1년 걸리기도/깐깐한 검품·실험결과 공개로 두터운 신뢰/“기업지원 사양” 철저한 독립으로 권위 유지88년 일본의 스즈키사가 미국시장에 내놓은 지프형 레저차량 「사무라이」는 깜찍한 외관과 저렴한 가격으로 크게 히트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급회전시 뒤집힐 위험이 높다」는 내용의 기사가 「미국소비자조합(CU:CONSUMERS UNION)」이 발행하는 월간 소비자잡지 「컨수머스 리포트」에 실린뒤 사정은 급변했다. 이후 사무라이는 소비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고 결국 얼마안가 시장에서 도태되고 만 것이다. CU가 미국소비자들로부터 얼마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으며 반대로 기업들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소비자운동의 핵이라 할 수 있는 CU를 찾아 이러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아본다.
미국소비자운동의 본산 CU는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약 30떨어진 용커스라는 한적한 동네 초입에 자리잡고 있다. 연면적 1만7천㎡크기의 2층짜리 시멘트건물 2채에는 가전 전자 화학 식품 레저등 품목별로 구분된 42개의 제품검사실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에어컨 냉장고같은 주요소비재는 물론 페인트 의약품 콘돔 손톱깎이에 이르기까지 각종 소비재에 대한 제품비교검사가 연중 이뤄진다.
CU가 연간 실시하는 제품검사품목은 66종류. CU의 간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렴, 매년 검사품목과 일정을 결정한다. CU홍보책임자 라나 애런씨는 『소비자들이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품목선택기준』이라며 『가격이 높을수록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만큼 보다 정확한 정보제공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냉장고 TV 세탁기등 주요가전제품은 매년 검사하고 자동차 역시 코네티컷주의 별도 시험장에서 연중 테스트를 실시한다.
각 품목당 시장점유율이 높은 회사의 제품순으로 20∼40여개씩 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총 2천여가지의 각종 제품이 CU의 시험을 거치게 된다. 제품구입및 검사비용만 연간 1천7백만달러에 달한다. 검사대상 품목은 암행시장조사팀이 직접 일반상점에서 현찰로 구매, 운반해온다. 기업으로부터 공짜로 제품을 제공받지 않는 것은 물론 CU의 검사를 받게될 제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달도 시키지 않는다.
전체직원 4백20명가운데 이곳에서 제품검사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1백40여명. 대부분이 석·박사학위를 소지한 전문가들이다. 10여년전 매사추세츠주 홀리크로스대학 교수직을 내던지고 CU에 합류한 화학검사실 수석연구원 조프리 마틴박사는 『일반기업보다 돈은 많이 받지 못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보람있는 직장』이라고 말했다. 보통 한 품목당 3∼6개월의 검사기간이 소요되지만 길게는 1년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제품을 생산한 기업에서 품질검사방법을 배우러 올 정도로 CU의 제품검사과정은 꼼꼼하고 엄격하며 때론 기발하기까지 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19개 회사의 전자오븐을 늘어놓고 성능을 시험중이던 가전제품검사실소속 연구원 루드 그린버그씨는 『가정주부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제품을 평가하기 위해 하루에 수백개씩 케이크를 굽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레저용품 검사실에서는 러닝머신의 내구성을 시험하기 위해 운동화가 부착된 쇠막대가 쉴새없이 발판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러닝셔츠차림에 양말 한짝을 신고 앉아있는 마네킹은 세제의 성능과 옷가지 손상여부를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각 검사실에는 연구원들이 직접 고안해낸 각종 검사기구들이 쉴새없이 가동중이다. 검사결과는 보통 1백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로 작성돼 편집국으로 넘겨져 기사로 작성된다.
또 신문 방송에 제공하는 연합기사와 온라인정보망을 통해서도 소비자들에게 제품검사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컨수머스 리포트 8월호의 경우 시판중인 식기세척기 20종에 대한 가격과 연간전기사용료 세척시간 물소비량 세척능력 소음 등 검사결과가 알기 쉽게 도표로 실려 있다.
또 「A사제품은 12인치 이하 크기의 접시만 세척이 가능하고 세척이 끝나면 그릇들이 매우 뜨거운 상태가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전기가 끊겼다 다시 들어오면 재작동하지 않으며 검사과정에서 내부부품이 녹스는 것이 발견됐다」는 식으로 실제사용시에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들까지 상세히 지적하고 있어 소비자는 직접 매장에 가지 않고도 식기세척기에 대해 훤히 꿰뚫을 수가 있다. 더 나아가 이같은 검사결과를 종합, 평점을 매긴뒤 가장 추천할만한 제품까지 명기하고 있다.
라나 애런씨는 『낮은 점수를 받은 기업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오면 이들을 초청합니다. 검사과정을 직접 보고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지요』라고 말했다. 60년 가까운 CU 역사상 기업으로부터 손해배상소송에 걸린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실제로 손해배상을 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는 설명이다. 컨수머리포트에는 광고가 없다. 기업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지원도 받지 않는다. 개인의 기부금도 평생 5천달러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CU의 권위는 외부영향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에서 나온다』는 로다 카펫킨 CU대표의 지론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0년전 3백70만부였던 컨수머스 리포트 판매부수는 현재는 5백만부로 늘어 미국전체 잡지 가운데 10위권내에 들고 있다. 판매수익은 1억2천만달러에 달하는 CU연간예산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CU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밑천은 소비자들의 신뢰와 애정이다.<용커스(미 뉴욕주)="김준형" 특파원>용커스(미>
◎미 소비자조합 역사/1927년 전신 「리서치」 설립·36년 본격출범/54년엔 뉴욕주에 검사시설 갖춘 본부 마련/매카시즘 선풍땐 “공산당전위” 매도되기도
1920년대 미국에는 대량생산체계가 본격적으로 갖춰지면서 자동차 라디오 칫솔등 신제품들이 마구 쏟아졌다. 일반대중들은 대량생산체제 덕에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게 됐지만 동시에 생산자의 과장 허위광고앞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됐다. 미국 상무부 표준국(Bureau of Standard)간부이자 소비자운동가이던 프레데릭 슈링크가 미국소비자조합(CU)의 전신 「컨수머스 리서치」사를 설립한 것도 이무렵인 1927년이었다. 슈링크는 표준국의 제품검사 노하우를 이용해 제품에 대한 철저한 검사를 실시, 이를 「컨수머스 리서치 리포트」로 펴냈다. 5년만에 당시로서는 상당한 숫자인 4만명의 독자를 확보했다.
그뒤 1936년 열악한 작업환경과 전제적인 조직운영에 반발한 직원들이 파업끝에 컨수머스 리서치사를 뛰쳐나와 CU를 조직하고 「컨수머스 유니언 리포트」를 발간했다. 경제학교수 노동운동가 언론인 인권변호사등이 주축이 된 발기멤버들은 「제품에 대한 정보와 제품생산기업의 노동조건을 소비자들에게 알림으로써 최종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수 있도록 한다」는 요지의 강령을 채택했다. 컨수머스 유니온 리포트지는 3년만에 8만5천명의 독자를 확보, 라이벌인 컨수머스 리서치 리포트를 제치고 최대소비자잡지로 부상했으며 42년 「컨수머스 리포트」로 명칭을 바꿨다.
한때 광고주들의 압력을 받은 뉴욕 타임스등 60여개 언론사가 컨수머스 리포트의 광고게재를 거부하고, 매카시즘의 선풍에 휘말려 공산당의 전위조직으로 매도되는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2차대전후 50∼60년대 지속적인 호황덕에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 54년에는 뉴욕주 마운트버논에 검사시설을 갖춘 본부를 마련했고 다른 소비자단체에 경제적 기술적지원을 할수 있을만큼 재정적 기반을 갖췄다. CU는 70년대 이후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오스틴 등 3곳에 소비자운동사무실을 개설, 각종 소비자피해구제를 위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으며 영국소비자연합 국제소비자 조합기구같은 조직과도 연대, 국제 소비자운동을 선도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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