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개봉되어 큰 성공을 거둔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아이큐 75의 천치 검프는 미국의 역사를 얼룩지게 한 흑인차별정책, 군수자본가 외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었던 베트남전, 이념보다는 실리위주로 바뀐 중국과의 핑퐁외교, 이 모든 것의 반성으로 일어났지만 비판 아닌 비판세력으로 전락한 히피운동의 허무한 몸짓, 노력보다는 운의 힘으로 불어닥친 돈태풍등 미국역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베일이 드리웠던 미국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하필이면 감독은 미국역사의 중심에 자랑스런 영웅을 배치하지 않고 왜 남부끄러운 바보를 풀어놓았을까. 왜 이 바보를 무공훈장을 탄 월남전의 영웅으로, 중국에서 열린 세계탁구대회의 우승자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또 왜 미국인들은 이 바보의 인생에 눈물을 흘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모자라기는 하지만 가식없는 바보의 눈이 정상인의 눈보다 현실을 왜곡시키지 않고 깨끗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루신(노신)의 「아Q정전」을 떠올렸다. 이 중국의 선배바보도 미국의 후배바보만큼 세상을 아주 명징하게 비춰주었다.그 다음에 드는 생각. 그러면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줄 현명한 바보는 어디 있는가.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바보는 없다. 우리나라의 집단주의적 성향 때문에 그저 약간만 이상할 뿐인 독특한 개성들이 무참하게 마모되어 버려 모두 다 보통사람이 된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록 이런 집단주의가 단시간에 많은 부를 축적시킬 수는 있었지만 우리 사회의 부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우리 한국도 미국이나 중국의 바보 하나만 있으면 이렇게 불행하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그런 바보를 만들고 사랑할만한 사회적 여건, 문화적 창조력과 열의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보같은(?) 희망이 생기게 되었다.<장현동 문학평론가>장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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