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외삼촌으로 오랜 관료생활 경험/종교활동보다 대외 교류협력에 동분서주「평양은 한국의 옛 예루살렘」이라고 기억하는 교계인사들이 있다. 초기 기독교의 부흥지는 북한이었고 순교자는 물론 민족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북한의 기독교는 형식적이라 이 말도 무색해졌다.
강영섭(64)목사는 북한 기독교계의 실세로서, 대외 교류협력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지난 6월에는 희년예배와 통일대회참석을 위해서 1개월간 미국을 순회했다. 또한 4월에는 일본교토(경도)에서 「8월15일 판문점에서 남북한희년공동예배 개최」에 서명한 북한측 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년5월에는 도쿄(동경)에서 열린 제4차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독자대회에서 『온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는 정치적 색채가 짙은 설교를 하기도 했다.
오랜 관료생활끝에 뒤늦게 목사가 된 그는 94년3월 고기준 목사가 사망한 후 외국행이 더욱 잦아졌다. 무엇보다도 그는 김일성의 외조부이자 부주석으로 권력서열 3위까지 올랐던 강량욱 목사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맡고있는 직책으로는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위원 ▲범민련 북측 부의장 ▲조·일우호친선협회 부회장 ▲조평통 위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위원 ▲북과 남, 해외민족대회 준비위원회대표 ▲조선종교협회 부회장등이다. 기독교목사로서 종교적인 활동보다는 통일과 해외동포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69년 내각 서기국부국장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이해 12월부터 73년까지 4년간은 주 루마니아대사로서 말리대사를 겸했다. 중앙재판소 사무원등을 거친후 북한기독교를 탄압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85년 평양신학원(3년과정)을 마쳤고, 89년 김성률목사의 후임으로 조선기독교도연맹 위원장이 되었다.
지난6월 미주순회 교계·예술단 대표로 갔을 때 『90년대에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기독교인의 애국애족을 강조하기도 했다.<민병용·통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민병용·통일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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