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의 편안함 떨치고 완전 삭발한채 꿈을 찾아 맨해튼 무대를 누빈다춤꾼은 가난하다. 현대무용의 메카라는 뉴욕 맨해튼도 예외는 아니다. 단체든 개인이든 표 팔아서는 먹고 살지 못한다.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후원자가 생기기 전까진 웨이터나 웨이트레스, 바텐더등 입에 풀칠할 근거를 따로 마련해두어야 춤을 출 수 있다.
안은미(32)씨는 이 가난의 한복판에서 한평생 춤만 추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현대무용 전공으로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서울에서 개인 스튜디오도 내고 여기저기 시간강사도 했다. 있는 재능에 작업도 열심히 해 좋은 평가도 받고 돈도 제법 벌었다. 하지만 일상은 참으로 놀라운 포식력과 번식력을 지닌 것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춤말고 해야할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좋은 춤을 추고 싶다는 그의 꿈은 어느새 잔해만 남게 됐다. 돈없이 사는 것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꿈없이 사는 건 더 무섭고 끔찍했다. 그래서 92년 봄 훌훌 털고 가난한 춤을 찾아 맨해튼으로 왔다.
뉴욕대(NYU) 대학원과정을 마치고 이제 1년 남짓. 짧은 기간이었지만 벌써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힘과 기교가 어우러진 그의 춤은 대단히 호소력있고 역동적이어서 지금까지 오디션에서 남에게 처져본 적이 없다. 다음달 말에는 권위있는 신예 등용문인 DTW(덴츠 시에터 워크숍) 오디션에 도전한다. 맨해튼 무용계의 대모중 한명인 베시 셴버그가 이 오디션의 심사위원인데 이 노 무용가가 그의 춤을 직접 보고 오디션 응모를 권했다.
그는 4년전 머리를 박박 밀었다. 미국행을 몇달 앞두고서였다. 덕지덕지 붙은 게 너무 많고 거추장스러워서 자른 머리였는데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춤추는 데는 그만이어서 지금도 자라기가 무섭게 밀어버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삭발은 어쩌면 미국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이자 정끊기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는 1년에 두번 서울에 들어간다. 친구와 친지들이 일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주머니를 털어 도와주기도 한다. 춤꾼으로서의 삶을 위해 털어버리고 떠나온 곳이요, 사람들이지만 언제나 따뜻하게 베풀어주어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는 자신의 춤이 살아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을 주어 무거운 삶의 발자국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었으면 하고 늘 소망한다. 무용가의 쓰임새가 공동체 샤머니스트의 그것이라 생각하는 그는 오늘도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에 오른다. 춤꾼은 풍요롭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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