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대 안드레이 란코프박사 주장/소,「조만식 중심 북 장악」 정책 실패로/군내 젊은장교중 지도자감 물색 “낙점”/김,최고위직 임명에 군인의 길 더 바라김일성은 해방직후 자신의 의사에 반해 권력의 정상을 우연히 차지하게 됐다는 주장이 러시아의 북한문제 전문가에 의해 제기됐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 동방학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박사는 최근 한국에서 번역된 저서 「북한현대정치사」에서 구소련문서 및 북한 공산정권 창건에 관련된 소련측 인사와 북한망명인사들의 증언등을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다음은 주요내용 요약이다.
<북한의 공식적 역사서적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활동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을 스스로 조직, 지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어떠한 조선인민혁명군도 존재한 바 없다.< p>북한의>
남한의 일부 전문가들이 강력히 제기하고 있는 김일성장군에 대한 바꿔치기주장도 사실과 거의 관계가 없다. 필자는 김일성의 소련 망명기간에 그와 생활했거나 자주 접촉했던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바꿔치기 주장을 신뢰성과 근거가 없는 것으로 부정했다.
육로를 통해 북한에 들어가려던 김일성의 최초의 시도는 한만국경선 안동철교 파괴로 좌절됐고, 그래서 45년 9월말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에 도착, 귀국했다.
김일성이 평양에 도착했을 당시 그 자신도 그의 측근들도, 그리고 소련군 사령부도 그의 미래에 관해 어떠한 특별한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9월말 소련군사령부는 조만식을 지도자로 하는 현지 민족주의 정치세력에 의존해서 전개하려던 대북한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또한 남한의 공산당지도자 박헌영은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고 지나치게 독립적이라는 이유로 소련군정은 그에게 호감을 갖지 못했다. 소련은 과거의 빨치산활동으로 북한에서 일정한 지명도를 갖고 있던 소련군대의 젊은 장교를 「조선진보세력 지도자」에 잘 어울리는 후보자로 주목하게 됐다.
김일성은 귀국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소련군정으로부터 10월 14일 평양경기장에서 열린 소련해방군 환영군중대회에서 환영연설을 하라는 제안(엄밀히 말하면 명령)을 받게 된다. 이 군중대회에서 소련 25군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은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그리고 「유명한 빨치산 지도자」로 소개했다. 그후 그는 권력정상의 길을 걷게 된다.
45년말 김일성을 자주만났던 사람들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급격한 운명의 변화에 고민했으며, 최고위직에 자신이 임명된데 대해 열광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25군 사령부 직속 정치부 제7과책임자로 김일성과 자주 만났던 카프첸코는 후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김일성이 북조선인민위원장이 되도록 권고를 받은 직후에 그의 방에 들어갔던 때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는 몹시 기분이 상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연대를, 그리고 그 다음에 사단을 원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이 일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와같이 김일성은 아마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북한 권력의 정상을 우연히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가 평양에 조금만 늦게 도착했거나 평양 대신 다른 대도시로 갔더라면 그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연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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