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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희 연극 50년기념 「혼자사는 세 여자」(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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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희 연극 50년기념 「혼자사는 세 여자」(연극평)

입력
1995.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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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과 남은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백성희선생의 연극인생 50주년 기념공연 「혼자사는 세 여자」가 20일 정동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남편과 사별 후 한달에 한번씩 묘지를 방문하며 남편의 사랑과 체취를 기념하는 세 여자의 삶을 짜임새 있는 극작술에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이반 멘첼의 원작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최용훈이 우리말로 잘 다듬고 정일성이 깔끔하게 풀어가는 이 연극은 대작은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삶에 대한 잔잔한 질문들을 던진다.

지나간 날과 사랑하는 사람을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리스처럼 사라져 버린 과거에 침잠해 삶을 포기하는 것인가? 루실처럼 허세로 그리움을 위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이다처럼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 또한 귀하게 껴안는 것인가? 이 세 가지의 유형 가운데 백성희선생이 아이다역을 연기한 것은 의미있는 선택이었다.

아름다운 다리로 무대를 굳게 딛고 서서 머리를 세우고 『난 내 나이에 자부심을 느껴요』라는 대사를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연극의 상황과 현실의 모습이 진실되게 겹쳐진다. 스쳐가는 모든 것을 끌어안아 응축시켜서 꼭 필요한 만큼만 단정하게 풀어보이는 연기는 50년의 연극인생을 그가 얼마나 철저하고 야무지게 다듬어왔는가를 보여준다. 김금지 윤소정 이호재등의 후배들과 어우러져 보기드문 앙상블을 이루면서 진정한 원로배우의 모범을 보이는 모습 또한 값지다.

무대 위의 그녀의 모습이 빛날수록 지난 50년간 한국 연극의 중심을 잡아왔고 국립극단 단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던 어른의 올곧은 행적을 기념하기에 이번 공연이 너무 조촐한 것이 섭섭하다. 특히 올해는 광복 50주년 기념행사들이 한창인데 우리의 역사와 백성희선생의 삶이 잘 어우러진 창작극이 공연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수선스럽고 어설픈 기념공연보다 이 작품이 진정한 배우로서 백선생이 내보이는 자부심과 근성의 향기를 길게 음미하도록 하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백선생의 경우 지난 50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과거를 추억하고 동시에 그 지혜와 연륜으로 다시 앞으로 남은 날의 행로를 시작하는 첫걸음에 불과한듯 보이기 때문이다.<이혜경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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