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절 작품 가득한 낭만·불굴의 인간상에 흠뻑 매료나는 지금까지 일흔다섯해에 달하는 인생의 길을 걸어오면서 「세상의 길」을 여는 수송과 유난히 깊은 인연을 가지며 살아왔다. 열다섯 되던해 선친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정규학업을 중단한 채 진해의 해원양성소를 찾은 날로부터 사업가로서의 삶은 시작된다. 보다 넓은 세상에 나가 견문과 지식을 쌓아야겠다는 의지로 택한 길이었으며, 번민끝에 내린 이때의 결단이 바로 오늘날의 한진그룹으로 이어지는 길고긴 인생여정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해원양성소를 졸업한 나는 일본 조선회사에서 선박기술을 익힌 뒤 배를 타기 시작했으며, 중국과 동남아 각지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세계의 문물을 익히고자 애썼다. 넓디넓은 대양에의 꿈과 숨막힐 듯한 식민치하의 암울한 현실을 감내하기엔 너무도 컸던 가슴속의 울분이 나를 바다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이런의 시에 심취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바이런은 19세기초 영국의 시인으로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주자다. 괴테는 그를 가리켜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의 시 전편에 흐르는 인물, 즉 신념에 따라 어떠한 난관이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한 목표를 꿋꿋이 추구해 나가는 「바이런적 인간상」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바 있다.
「대양」에도 이러한 낭만과 인생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아울러 지닌 바이런적 인물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는 그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차일드 해롤드의 순례」에 수록된 시로서 6부작 연시이다. 비록 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바다에의 각별한 애정이 담겨 있는 시이기에 문학적 평가를 떠나 내가 가장 애송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양을 향한 애정과 폭풍우조차 「즐거운 두려움」이라 말하는 집념, 그리고 자신을 파도의 갈기 위에 손얹은 대양의 아들이라 평하는 자신감등.
내가 바이런을 탐닉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때문인지 모른다. 불굴의 신념과 낭만, 그리고 오만이라 해도 좋을 만큼의 자신감을 지닌 그의 시에 식민치하의 좌절과 울분을 지닌 젊은이가 매료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아직 우리의 사회풍토에서는 기업인과 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업인들에게도 예술적 철학적 감각은 필요하다고 본다. 예술가의 혼과 철학이 담긴 작품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사업도 예술이라고 믿는다. 경영자의 독창적인 경륜을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은 오랫동안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사회에 공헌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50여년간 예술작품을 창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기업을 경영하려 애썼다.
젊은 시절 해운왕이 되고자 했던 꿈은 이제 한진그룹의 육해공 종합수송체제중 바다의 길을 열고 있는 한진해운에 의해 많은 부분 실현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니 이 또한 바이런의 시에 힘입은 바 크기에 젊은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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