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층 편집국앞 베란다에 서면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구조선총독부 건물 광화문 동십자각 등 살아 있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15일 아침 거기서 총독부 「상투」자르기 빅이벤트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경복궁 복원이 마무리되면 콘크리트로 된 현재의 기형 광화문도 14.5m앞 본래 자리에 목조건물로 되살린다고 한다.
광화문은 영욕의 역사가 점철돼 있는 민족수난의 상징으로 상처가 한없이 깊어 한 그 자체이다.
1395년(태조4년) 경복궁의 정문으로 태어나 1592년 임진왜란때 소실됐다.
1865년(고종2년) 중건됐으나 192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신축과 함께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그나마 6·25때 불 타버린뒤 68년 12월 콘크리트 몸으로 되살아났다. 일제시대 언론인 소오 설의식(1901∼1954)선생은 1926년 8월11일자 동아일보에 「헐려 짓는 광화문」이라는 글을 남겼다.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중략)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 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와하고 못 잊어 할 뿐이다.…석공의 마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알음이 없으리라 마는 뚜닥닥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을 아파한다.… 팔도강산의 석재와 목재와 인재의 정수를 뽑아 지은 광화문아!
돌덩이 하나 옮기기에 억만 방울의 피가 흘렀고, 기왓장 한개 덮기에 억만 줄기의 눈물이 흘렀던 광화문아!… 비바람 오랜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며, 수구당도 드나들고 개화당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의 사절도 지나고 청국의 국빈도 지나던 광화문아! …서로 못본지 수년이나 된 경복궁 옛 대궐에는 장림에 남은 궂은 비가 오락 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하는 마치 소리는 장안을 거치어 북악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달파하는 백의인의 가슴에도 부딪친다」 그 광화문을 일제가 허문지 68년만인 광복50년 8월. 소오의 후손이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광화문을 내다보며 「메아리」에 광화문 이야기를 쓰고 있다.
기연이다. 필자도 68년후를 기약하며 「헐리는 총독부, 복원되는 광화문」을 써보려 하나 문재가 모자라 베란다앞에서 서성일 뿐이다.
오늘도 그날처럼 광화문에 비가 내린다.<여론독자부장>여론독자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