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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이런점을 고치자(광복 50/다시 여는 반세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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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이런점을 고치자(광복 50/다시 여는 반세기:12)

입력
199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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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행동일치 생산적 민주주의로/지역주의·검은돈 관행 없애기 미흡/인물·파벌중심 뿌리없는 정당 이제 그만일제 식민통치, 해방, 남북분단, 6.25전쟁, 군사쿠데타, 유신독재, 5.18광주항쟁… 그리고 광복 50주년.

20세기 이후 한민족의 현대사는 혹독한 고난, 시련으로 가득찬 시대였다. 현대사의 마디 마디에 배어있는 민족의 한은 세계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나라를 잃었던 금세기 전반은 물론이고 광복이후 50년도 비극의 사건들로 점철돼있다. 이런 비극과 고난은 19세기말 기울어가는 조선왕조의 무능, 무지에서 잉태되기 시작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조선왕조는 제국주의의 팽창, 새로운 국제질서의 태동이라는 세기말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도 못했다.

마찬가지로 20세기말의 세계도 냉전체제 종식이후 새 질서를 형성해가는 격변기에 놓여있다. 따라서 「다시 여는 반세기」, 즉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바로 지금 우리가 시대변화의 흐름을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역할은 모두가 떠맡아야 하지만, 일차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정치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는 미래의 역사를 담보해낼 정도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창조적인 리더십, 생산적인 정치를 창출하기 보다는 소모적이고 퇴영적인 전근대적 정치행태에 매몰돼 허덕이고 있다.

우리 정치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의식, 제도, 관행 모든 부문에 산재해있다.

이중에서도 정치의식의 이중성은 가장 먼저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정치인이건 국민이건 말로는 민주주의, 정치개혁을 외치지만 행동은 권위주의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병영(연세대)교수는 본사의 「대전환기, 한국의 선택」이라는 좌담에서 『한국인은 권력을 욕하면서도 추구하는 양향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다른 규율에 의해 움직이는 별세계로 인식되고 탈법, 권력다툼이 묵인돼 왔다』고 진단한 바 있다.

지금도 이런 이중적 현실은 계속되고 있다. 현 정권이 정치개혁을 추진, 「돈안드는 선거법」을 만들었다고 공언했지만 6.27 지방선거에서 법규정을 훨씬 넘는 자금이 동원됐다는 것은 정치인 대부분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전직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설도 정치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치권 주변이나 금융가에서는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설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지금 비자금계좌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전직대통령들이 집권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채 그냥 묻혀버리는게 한국정치의 실상이다. 때문에 정치불신은 증폭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국민통합의 에너지는 엄청나게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권을 법의 테두리로 끌어들여야 한다. 정치권의 탈법, 비리가 예외없이 단죄받을 수 있도록 법의 독립, 권위회복이 필요하다는게 중론이다.

보다 심각한 정치의식의 병리현상은 지역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인 대다수가 지역감정의 극복을 외치지만, 내면적으로는 이를 부추기며 악용하고 있다. 국민들도 지역주의의 폐해를 알면서도 그 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주의는 남북분단에 동서분단까지 부가하는 치명적인 민족의 분열로 시급히 치유돼야 하는 과제이다. 19세기말 조선왕조의 지도자들이 소모적인 당쟁과 분열로 식민통치의 치욕을 안게된 냉엄한 역사는 지역주의 극복의 절박함을 강조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지역감정은 단숨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우선 정치지도자들이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동안 김영삼 대통령이나 야권의 김대중 김종필씨 등 정치지도자들이 지역문제를 함께 고민한 적이 없을 정도로 우리정치는 지역문제에 진솔하게 접근하지 않고 있다.

지역감정의 혁파를 내세우는 일부 정치인들도 대안의 모색에는 별다른 열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정치구호로 지역문제를 떠들게 아니라 소리없이 인사 재정의 탕평, 지역간 화해 등 구체적인 극복방안을 마련해야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은 쉽게 노정된다. 무엇보다 민주정치의 기본단위인 정당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정치학자들이 『한국정당사는 단절의 역사』로 규정하듯 한국정치에서 정파의 이합집산은 극심했다.

여당은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 장면 정권의 민주당,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민정당, 노·김영삼 정권의 민자당으로 이어져왔다. 야당은 이정권때 한민당 민국당 민주당, 박정권때 민정당 민중당 신민당, 전정권때 민한당 신민당, 노정권때 민주당 평민당 신민주공화당, 김정권때 새정치국민회의 민주당 자민련으로 변해왔다.

이런 변천은 정당의 파벌성, 정치의 단절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정당이 이념, 지향점에 따라 구성되지 않고 유력한 정치지도자에 의해 양산돼왔음을 실증해주고 있다.

지금의 정치판도 이질적 세력이 한 정당에 혼재한 불안정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불안정한 구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길을 걸어온 세력들끼리 합치는 진정한 정계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리고 정계개편후에는 인물중심이 아닌 정당중심의 정치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 후진성도 정치개혁의 우선순위에 해당한다. 정치학 원론에서는 국회를 국민대표기관이자 입법기관으로, 국회의원을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는 공천의 비민주성, 보스정치, 지역감정 등에 편승해 함량미달의 의원들이 선출되고 있고, 많은 의원들이 정치리더의 손아귀에 장악돼 있다.

의원들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회는 입법부의 고유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치지도자들의 지시에 좌우되는 정쟁의 현장으로 전락해 있다. 연례행사인 여당의 예산안 날치기통과, 야당의 실력저지는 그 이면에 정당의 비민주성, 의원들의 독립성결여라는 원인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과제는 이밖에도 통치철학의 빈곤, 엄청난 돈이 드는 선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를 일거에 해결하는 묘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론적이지만 정치인들의 충정과 노력, 국민들의 의식수준 향상, 정치지도자들의 창조적 리더십이 정치개혁을 이루고 「다시 여는 반세기」를 화려하게 만들어내는 열쇠가 된다고 할 수 있다.<이영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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