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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문화(천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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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문화(천자춘추)

입력
199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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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때 형에게서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물려 받았다. 입시준비에 찌들려 지내던 그 시절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다감한 감성을 지닌 당시 그것은 거의 유일하게 바깥세상으로 열린 경이로운 통로이기도 했다. 특히 심야의 음악방송을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낼 수 있었는데 그 시절엔 낡은 트랜지스터가 사랑과 위로를 주는 무슨 생물같기만 했다.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듣진 못하지만 그때 시작된 라디오와의 인연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밤의 플랫홈」이라는 프로가 「사랑이 있는 곳에, 김지은입니다」라는 프로로 바뀌었을 뿐이다. 주로 밤에 일을 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있어서 심야의 음악방송은 「시간의 진공」을 메워주는 이상의 역할을 해준다.

더불어 여러가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편린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라는 프로를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세상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진행자에게 드러내는 이런저런 삶의 사연들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한밤중 깨어 있는 자들만의 동류의식이나 유대감같은 것도 느끼게 된다.

흉악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원인중에 비디오와 영화가 한몫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번 보았던 경험은 뇌파에 입력돼 행동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라디오를 듣고 범죄를 꿈꾸었다는 소식을 나는 아직 접한 적이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엽서에 담아 정성스럽게 띄워 보내는 마음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TV와 비디오 앞에 앉아 상상력을 잃어가는 새로운 세대에게 있어서 특히 라디오문화는 복원돼야 한다.

라디오에 관한한 예순살이 돼서도 나는 심야음악프로를 기다리는 청소년으로 남고 싶다.<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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