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찬란한 「우리 얼」 동북대륙에 생생히(중국리포트:15)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찬란한 「우리 얼」 동북대륙에 생생히(중국리포트:15)

입력
1995.08.16 00:00
0 0

◎「민족의 고토」 곳곳 벽화·왕릉·비… 「선인의 숨결」 그대로/조선족들 전통보존 앞장… 항일격전지 고국지원 아쉬움중국내 소수민족중 하나인 조선족이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 동북지역은 우리 민족의 기상과 얼이 끈끈하게 배어 있는 역사의 땅이다.

이 땅은 고조선에서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 북방진출의 최전성기였던 고구려 이후 잊혀진 왕국 발해에 이르기까지 민족혼의 뿌리가 뻗쳤던 고토다. 근세 들어서는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일제의 억압과 착취를 피해, 또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항일독립투쟁의 거점을 찾아 건너온 애국혼이 서린 땅이다.

고구려때 만주일대를 평정했던 광개토대왕의 역사적 자취는 지금도 지린(길림)성 지안(집안)현 퉁고우(통구)에 광개토대왕비로 남아 있다.

또 이 지역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들은 진취적이고 활력에 넘치는 고구려인의 옛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 고분벽화중 동이수렵도에 묘사돼 있는 「말을 달려 활을 쏘며 사냥을 하는 고구려인의 모습」은 단군 후예의 용맹한 민족기상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승학비천도에는 광대한 하늘과 땅을 동화시키는 민족 고유의 국선정신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한편 고구려의 후예인 대조영이 세운「잊혀진 왕국」 발해의 유적지도 헤이룽장(흑룡강)성 해란강유역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북은 이와함께 일제치하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와 치열하게 항일투쟁을 벌인 피와 눈물의 격전지기도 하다.

동북 각지의 독립군은 만주벌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국내의 일본군 병영과 관서를 습격하기도 했다.

김좌진 장군을 중심으로 나중소 참모장과 이범석 연성대장등이 소속됐던 북로군정서등은 중국의 청산리(청산리), 봉오동 일대에서 벌어진 대일항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북만의 눈구덩이나 장백산(우리나라의 백두산)의 밀림속에서 순국한 이름없는 열사들, 일제의 무차별 보복으로 희생된 무고한 동포의 수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근년들어 상하이(상해)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되고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는등 민족사보존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미흡함은 여전하다. 동북의 독립군 격전지, 충칭(중경)광복군 총사령부, 안중근 의사의 의거장소등에는 당시를 증거하는 표지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지 청산리전투현장에는 지난 86년 지린(길림)성 허룽(화룡)현 정부가 세운 「청산리 항일 전적지」라는 작은 목비 하나가 외롭게 세워져 있을 뿐이다.

현재 동북의 조선족 인구는 약 2백여만명. 그중 지린성 옌볜(연변)에는 85만여명(94년 통계)의 동포가 살고 있다. 그들은 조선족 자치주를 형성, 타고난 근면성과 뛰어난 자질로 농업은 물론 정치, 경제, 교육, 문화등 각 분야에서 어느 민족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교육열이 높기로 이름난 조선족 자치주 연변에는 현재 연변대를 비롯, 연변의과대학과 농업대학등 조선족대학이 4개나 된다. 연변대에는 조선족 학부생만도 2천여명이 되며 대학원생은 2백여명.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전통문화에 관한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한채 중국사회속에서 「작은 조선」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 조선족 젊은이들은 한중수교이후 한동안 조국에 대한 오해등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향후 한중관계의 발전과 민족혼을 꽃피울 새싹으로 커가고 있다.<하얼빈=장학만 기자>

◎조선족 자치주 연변의 오늘/200만 중국동포중 85만명 거주/“두만강개발 중심” 외자 진출러시

옌볜(연변) 조선족자치주(연변은 약칭)의 인구는 모두 2백11만명. 이중 조선족이 85만4천여명으로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 사는 약 2백여만명의 동포중 43%가 연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는 한족이 1백10만여명정도로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이와 함께 몽골족 만주족등 17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연변은 1952년 9월에 자치주가 됐으며 연길 돈화 용정 도문 혼춘(훈춘)등 5개시와 안도 화룡 왕청등 3개의 현으로 이루어져있다. 개방시범도시인 연길시에는 조선족이 특히 많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 32만명중 조선족이 20만명을 차지하고 있다.

총면적은 4만2천7백㎢로 남한의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면적이다. 연변은 말그대로 변경에 있다. 지린(길림)성 동남부에 위치해 있고 동쪽은 구소련 연해주의 핫산지역과 남쪽은 도문강을 경계로 북한의 함경북도와 양강도등과 각각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이점때문에 국경무역의 전초기지로서 연변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연변의 접경지역에 있는 7개의 통상구를 통해 북한 러시아등과 국경무역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연변이 북한 중국 러시아국경의 삼각지대를 연결하는 두만강개발계획의 중심지역으로 부각되면서 외자기업의 투자열기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연변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84년 1개에 불과했지만 93년말에는 4백60개로 늘었다.

연길에서 자동차로 40분정도 걸리는 용정에 민족시인 윤동주의 묘가 있고 백두산근처에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 현장이 초라한 목비와 함께 남아있는등 연변의 곳곳에는 우리 민족의 얼이 숨쉬고 있다.<옌볜=김병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