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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암울한 시대 노래로 “저항”(가요 30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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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암울한 시대 노래로 “저항”(가요 30년:7)

입력
1995.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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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초상 「희망의 메시지」로 젊은층 파고들어/잇단 「금지곡」 지정이 오히려 강력한 전파력으로가수 김민기(45)에게는 노래가 주는 서정적 이미지 보다는, 「저항」과 「금지」라는 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이 각인돼 있다. 그의 음악은 70∼80년대의 질곡의 역사 속에 좌절된 청춘의 초상을 스산하고 암울한 정서로 노래해 왔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물이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죽었소…> (친구)

나지막한 목소리와, 가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는 듯한 성량에 실린 그의 노래는 지령처럼 은밀하고도 빠르게 젊은이에게 파고들었다. 젊은이들은 그의 암울한 노래에서 끝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읽었다.

대가는 가혹했다. 그의 노래는 잇달아 금지곡이 됐다. 71년 어렵게 발표한 첫음반 「김민기」는 발매 직후 당국에 의해 압수당했다. 김민기의 방랑이 시작되어, 군대로 공장으로 농촌으로 떠돌았다.

『제 노래에 공격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있는대로 노래하려 했을 뿐이지요. 돌이켜 보면 혈기왕성할 때 거부할 수 없었던 고민의 껍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던 김민기는 1년뒤 서울대 미대에 재입학했다. 억압적 사회분위기 속에 술에서 위안을 찾았던 그는 취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아침이슬」 「작은 연못」 「꽃피우는 아이」등의 노래는 금지곡이 됨으로써 오히려 강력한 전파력을 얻었다. 그 노래들은 학생운동과 노동의 현장에서, 대학가의 막걸리집에서 끊임없이 불려졌고 꺼지지 않는 불빛이 되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우리 시대 저항음악의 맨 앞에 서 있고, 그 뒤를 한돌,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등이 잇고 있다.

김민기는 지난 90년, 20년에 가까운 은둔을 끝내고 예술계로 돌아왔다. 『겨레의 노래 운동을 펴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 모두를 함께 묶을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 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모습을 오랫동안 드러내지 않은 것은 소신을 가지고 대중앞에 나설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대학로에 있는 학전소극장의 대표, 노래극 작가이자 연출가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70년대 초 동토에 뿌린 씨앗이 그곳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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